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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교만과 고집은 한 식구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09 조회수876 추천수13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1년 나해 대림 2주간 금요일 - 교만과 고집은 한 식구



 

미국에서 한 농부가 시골 비행장에 “싼 가격으로 스릴 있는 비행 제공”이란 선전 문구를 보았습니다. 농부는 아내의 생일날 비행기를 타고 자신의 농장을 함께 날아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의 생일날 비행장에 가서 비행기 조정사와 가격을 흥정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비싼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가격을 싸게 해주지 않으면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운전사는 할 수 없이 비행 마지막 순간까지 두 분이 비행기에서 어떤 말이나 소리도 내지 않으면 가격을 깎아주겠다고 했습니다.

비행기는 경비행기로 옆의 문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조종사는 비명소리가 나오게 하기 위해 급상승, 급강하, 급회전을 반복하였습니다.

비행을 다 마치고 착륙하면서 농부에게 말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제가 졌습니다. 이런 비행에서도 한 마디도 하시지 않다니요.”

“쉽지는 않았다오. 하마터면 아내가 떨어질 때 소리를 지를 뻔 했다오.”

 

우스갯소리지만 사실 사제로 살면서 만나는 신자들 중에 이와 못지않은 고집불통의 사람들을 종종 만나고는 합니다.

성당 다니라고 그렇게 이야기해도 고집불통인 사람들, 십일조 내라고 그렇게 말해도 고집불통인 사람들, 성체조배를 하라고 그렇게 말해도 끝까지 버티고 시도도 안 해보는 사람들, 정말 수없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가슴깊이 다가옵니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유다 지도자들과 가리옷 유다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들은 예수님께서 수많은 가르침을 주고 기적을 보여주었어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죽이려고 하였고, 부활하시고 나서도 그것을 덮으려고 무덤을 지키던 자들을 돈으로 매수하기까지 합니다.

결국 그들의 옹졸한 고집이 끝까지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죽음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끝까지 믿는 것도 고집이 아닙니까?”라고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고집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는 데까지 오지 못하게 하는 것도 고집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풍랑이 일었을 때 빠져죽기 전까지 잠자는 예수님을 깨워 도움을 청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보려고 했던 자존심과 옹고집이 있었다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먼 곳에서 오른 쪽에 그물을 쳐보라는 누군지도 모르는 목소리에 순순히 순명할 수 있었던 겸손함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자존심과 옹고집을 버리고 이웃의 충고에까지 순명할 수 있는 겸손이 생겼을 때, 마치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그 사람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역사하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남의 말이 옳을 수 있다는 생각을 늘 지니고 있어야 마침내 이웃들을 통해 하느님의 맛도 체험하게 되고 그렇게 신앙도 생길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의 맛을 일단 보면 다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목숨을 걸 수 있는 그분께 대한 신앙의 고집이 생깁니다.

 

김해숙씨와 박진희씨가 주연한 친정엄마란 영화에서는 박진희가 어렸을 때 하도 총명하여 주위 사람들이 “넌 말을 참 잘하니, 커서 꼭 버스 안내양을 해야겠다.”라고 하던 대사가 기억납니다.

다른 것을 겪어보지 못했던 시골 아주머니들에게 말 잘 하는 사람의 최고는 버스 안내양이었던 것입니다.

먹어보지 않고서 어떻게 맛을 알 수 있겠습니까? 겪어보지 않고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려하지 않고, 곡을 해도 울려고 하지 않는 옹고집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고집을 어떻게 꺾을 수 있을까요?

시골에서 불이나면 가장 먼저 빼내야 하는 것이 외양간의 소입니다. 그런데 소는 불이 무서워 밖으로 나오려하지 않습니다. 이 때 해야 하는 것은 움직이려하지 않는 소를 힘으로 잡아끄는 것보다는 그 안에 있는 여물통을 엎어버리는 것이랍니다. 그러면 이제 그 곳이 자신의 집이 아님을 알고 순순히 움직인다고 합니다.

자신 안에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자아를 엎어버리지 않으면 절대로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어떤 수도사에게 고민을 상담하러 찾아온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만을 하고 자신이 그렇게 된 처지를 정당화하고 있었습니다.

수도사는 찻잔에 차를 따르고 또 넘치도록 계속 따랐습니다. 상담하러 온 사람이 왜 차를 따르는 것을 멈추지 않느냐고 묻자 수도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마음입니다. 당신은 당신으로 가득 차 있어서 제가 무슨 조언을 해 드리더라도 당신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다 밖으로 흘러버릴 뿐입니다. 먼저 안을 좀 비워주세요.”

그렇습니다. 사실 고집을 부리는 것도 그 안의 자아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교만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보다는 자신의 판단이 더 옳다고 생각하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엎어버리고 따라버리지 않으면 그 고집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결국 자신 때문에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만 자신을 버리고 안 된다고만 마시고 한 번 성경말씀대로 용서해보고, 기도해보고, 십일조도 내보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려 시도라도 해 봅시다. 그 분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체험하면 할수록 나 자신을 비워나가는 것이 훨씬 더 쉬워질 것입니다.


   

<내가 꿈꾸는 그 곳>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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