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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10 조회수697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12월 10일 대림 제2주간 토요일




 
Elijah will indeed come and restore all things;
but I tell you that Elijah has already come,
and they did not recognize him
but did to him whatever they pleased.
(Mt.17,11-12)


제1독서 집회서 48,1-4.9-11
복음 마태오 17,10-13

교구의 어떤 신부님으로부터 이상한 신심 행위를 하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이들이 모여서 어떤 사람에게 들린 악령을 쫓기 위해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즉, 악령을 쫓기 위해 한 사람을 계속 때린다는 것입니다. 한 공동체가 성령의 이름으로 때렸다고 하는데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또 이러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자기가 안수기도를 하면 자기 손에서 불이 나가서(이 사람 손은 라이터인가 봅니다) 상대방의 죄를 모두 없앨 수가 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는 딱 보면 상대방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훤하게 알 수 있다는 말도 하더군요.

모두가 잘못된 신앙입니다. 악령은 인간의 폭력을 통해 쫓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의 죄를 없앨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그래서 고해성사가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신앙은 족집게 무당이 절대 아닙니다.

하긴 자신은 방언을 할 줄 알고 상대방은 방언을 할 줄 모른다며 그 상대방을 무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무시하고 있는 엄청난 착각 속에 빠져 있는 사람이지요.

이렇게 예수님이 철저하게 배제된 곳에서는 바른 신앙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 역시 물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말은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가 아닌, 자신들이 생각하는 모습으로 행하는 가운데에서 예수님은 철저하게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신앙은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개신교 목사가 이렇게 했다고 하지요. 그린벨트 안의 땅을 싼값에 사서 그곳에 불법 건축물을 지어놓고, 이곳이 정식 교회를 지을 수 있는 대지가 될 수 있도록 지목변경 해달라고 특별 기도를 신자들과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식 이하의 행동을 주님께서 과연 들어주실까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만 자신의 이득을 먼저 생각하는, 결국 주님이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당신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과 사람의 아들인 예수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스라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그런데 어쩌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자신의 생각에 주님을 맞추려고 하며,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이루고자 하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한다면 우리 역시 이천년 전 예수님을 배척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주님께서 원하는 것을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곁에 오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것은 훌륭한 계획이 아니라 그들을 격려해 주는 지도자이다.(존 화이트)




판공성사를 주면서

어제 판공다녀온 본당의 주임신부님 서예도구. 지저분한 제 방과는 너무 대조적이네요. ㅋㅋ

어제는 어느 본당에서 판공성사를 주고 왔습니다. 솔직히 고해성사를 오랫동안 준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좋은 말이 아닌 죄에 대한 나쁜 말을 계속 듣는데 어떻게 그 자리가 좋겠습니까?

그런데 종종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때면 저 역시 깊은 감동을 받게 되지요. 그리고 이러한 분에게 사죄경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고해성사를 보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면 힘이 쫙 빠지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있지요.

“신부님, 성사 본 지 1년 되었는데 저는 이제까지 지은 죄가 하나도 없어요. 고해성사 보라고 해서 이곳에 들어왔지만 뭘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과연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죄를 전혀 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죄를 없다는 것은 큰 교만이며, 성찰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지요. 이러한 분에게는 ‘사죄경’을 외어야 할지도 고민이 됩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깊은 성찰을 통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을 하시는 분에게는 저절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성탄을 위해 하는 지극히 형식적인 고해성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고해사제의 마음을 울릴 수 있도록 고해성사를 잘 준비하면 어떨까요? 아마 주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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