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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지순례1-미소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11 조회수534 추천수13 반대(0) 신고



캐나다에서 출발하는 성지순례 가족들과 이스탄불 공항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새벽 4시, 행여나 있을지도 모를 돌발 사태에 대비하여 일찍 로마 FIUMICINO 공항으로 나갔다.

밀라노를 경유하는 노선이었으므로 국내선 A 터미널에서 ‘밀라노’라고 쓰여 있는 줄 뒤에 서서 티켓팅을 하기 위해 한 참을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어 인터넷으로 받은 전자티켓을 내밀자 졸린 듯한 눈빛을 한 여직원이 퉁명스럽게 내뱉는 말이 가히 충격적이다.

“여기는 밀라노 ‘리나떼’ 공항으로 가는 창구입니다. ‘말뻰사’ 공항 가는 창구는 저 쪽으로 더 들어가셔야 됩니다.”

그때가 이륙 40분전, 허겁지겁 여직원이 말해준 곳으로 달려가 끝도 없이 서 있는 이코노미 클래스 줄 대신 한산한 비즈니스 클래스 창구에 표를 들이댔더니 이미 만석이 되어 좌석발권이 종료됐단다.

큰일도 한참 큰일이 난 것이었다. 약간 졸린 듯 멍했던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나 혼자서 하는 순례라면 모를까 매일 25명의 순례객들을 위해 말씀과 성찬의 전례를 이끌어야 할 책임을 맡은 지도신부가 빠져버리면 그 순례는 무엇이 되며, 또 멀리서 귀중한 시간과 금전을 들여 순례의 길을 나선 순례자들의 기분은 또 무엇이 되겠는가? 어떻게 하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는 그 날 안으로 이스탄불에 도착해야만 했다.

‘알이탈리아’ 항공사의 고객센터로 갔다. 내 앞에는 나와 똑같이 엉뚱한 줄에 서 있다가 밀라노 ‘말뻰사’행 비행기를 놓친 신사 한 분이 항공사 여직원과 고성이 오고가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 신사분은 안내문이 제대로 적혀있지 않았다는 둥, 항공사 측에서 ‘오버 북킹’을 받았다는 둥 한참을 항의하더니 벌겋게 열이 오른 얼굴로 다른 쪽으로 사라졌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을 나에게 물려주고 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이 곳 사정도 전혀 모르고 이탈리아말 또한 전혀 못하는 여행자가 되기로 했다.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환하게 미소 지으며 내 사정을 영어로 설명했더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잔뜩 찡그린 얼굴로 설전을 벌이던 그 여직원은 곧바로 표정을 바꿔 역시 환하게 미소를 짓는 얼굴로 ‘참 딱하게 됐다’며 여기저기에 분주히 전화를 걸어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 주었다.

그 여직원은 내게 아주 힘들게 로마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오후 비행기의 좌석은 구했지만 600유로 정도를 추가 지불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내가 600유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자 그녀는 자기의 상관과 직접 이야기 해보라며 그녀의 상관을 불러주었다.

나는 다시 웃으며 근엄한 표정의 상관에게 밝은 인사를 건넸다. 그는 내 설명을 다 듣고 나서 호탕한 웃음과 함께 600유로 정도를 더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는 종이에 자신의 서명을 하더니 큰소리로 ‘좋은 성지순례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인사하면서 오후 항공권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기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 차창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연신 미소 짓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내 앞의 신사 분처럼 험악한 얼굴로 소리를 높여 항의를 했다면 상황이 어떻게 됐을까?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밝고 환한 미소로 다가서는 사람에게 독설을 퍼붓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과 평화를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미소로 표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살면서 마주치는 인연들 모두에게 이렇게 밝고 환한 미소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웃으면서 사는 일이 그렇게도 힘든 일일까?

“그 날 우리의 입에서는 함박 같은 웃음 터지고 흥겨운 노랫가락 입술에 흘렀도다.”(시편126,2)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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