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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11일 야곱의 우물- 요한1,1-8. 19-28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11 조회수326 추천수1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6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19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우리가 세례자 요한처럼 ‘목소리’로 살아가게 하소서.

세밀한 독서(Lectio)
대림 3주일인 오늘 복음은 지난주에 이어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세례자 요한이 메시아(그리스도)가 아니라 역사 안에 메시아가 등장하는 것을 계시하는 사람임을 되풀이해서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요한은 빛을 증언하는 사람입니다.(요한 1,6-7) 이런 그의 자세는 사명을 시작할 때나 마칠 때나 변함이 없습니다. 요한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묻는다면 무엇보다 ‘한결같은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명을 마무리하는 순간에도 사람들에게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사도 13,25)라고 강조합니다.


그가 정화되고 진정한 사람이라는 인간적 매력이 있었기에 그를 온 마음으로 존경하고 섬기는 추종자들을 옆에 둘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겸손하게 “자기 뒤에 오시는 분, 곧 예수님을 믿으라고 백성에게 일렀습니다.”(19,4)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세례를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기를 희망했기 때문이지요. 마침내 그는 자기 제자들마저 모두 예수님께 보내고 홀로 남습니다. 세례자 요한! 그는 참으로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목소리’입니다. 요한은 유다인이 보낸 사제들과 레위인들에게 자신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한 1,23)라고 밝힙니다. 요한은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1절)을 전달하는 ‘목소리’이기에 특별히 자신만의 메시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목소리가 없으면 메시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목소리는 사라져도 메시지는 남습니다.(성 아우구스티노) 요한은 진정하고 유일한 계시자가 나중에 말씀하실 것을 미리 준비하는 ‘목소리’입니다. 그의 뒤에 오실 더 강한 분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에 세례자 요한은 기쁨에 차서 외치며 조용히 사라질 것입니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3,29-30)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사제와 레위인들에 이어 바리사이들이 달려와 요한의 세례를 가지고 그의 정체성을 건드립니다.(1,24-25) 요한은 단순하게 물로 세례를 준다고 말하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입니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26절) 바리사이들은 지금 요한이 하는 일의 권한을 걸고넘어지지만 시간이 흐르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가지고 그분의 정체성에 시비를 걸고 급기야 그분을 죽음에 넘기게 됩니다. 아마도 요한은 바리사이들이 앞으로 예수님을 어떻게 대할지 미리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이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도 모릅니다.(요한 8,14) 그들은 예수님을 모를 뿐 아니라 그분의 아버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19절) 하느님 나라는 모든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오는 예수님의 행위 안에 현존한다는 것, 하느님과 함께 오는 새로운 시대는 어떤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행위로 열린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루카 11,20; 17,21 참조) 결국 그들은 자신들만 선택되었다는 오만함 때문에 하느님 나라가 자신들 가운데 와 있는데도 알지 못하고 세리와 창녀들도 들어가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묵상(Meditatio)
주님, 오늘 세례자 요한에게서 저는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지 배웁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요한처럼 정직한 자세, 진정한 자세입니다. “진정 하느님 말씀을 듣는 자는 침묵까지도 귀에 울리게 할 수 있습니다.”(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기도(Oratio)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7)
임숙희(가톨릭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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