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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의 길과 자신의 길 [탕녀와 미륵예수]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11 조회수382 추천수0 반대(0) 신고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요한복음서 1, 19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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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증언하러 왔다"

우리는 증언할 일이 있다. 모든 평신도들에게는 그 증언의 사명이 당연하게 주어진다. 그리고 누군가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의해서 증언해야 할 소명을 지니기도 한다. <교의헌장 참조> 세례자 요한의 임무는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오늘 복음말씀 중에서 세례자 요한의 임무라고 할 수 있는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하신 이사야 예언자의 인용 말씀이다고 할 수 있다.

교리서 523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닦기 위하여 파견된 주님 직전의 선구자이다.“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루카 1,76)인 요한은 모든 예언자를 능가하는 마지막 예언자이며 복음의 시작이다. 그는 자기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세상에 오시는 그리스도께 인사를 드렸고,“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이라고 부른 “신랑의 친구”(요한 3,29)가 됨을 기뻐했다.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루카 1,17) 예수님에 앞서 온 그는 설교와 회개의 세례,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순교로 예수님을 증언한다.

교리서 696 불. 물이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생명’의 탄생과 풍요를 가리킨다면, 불은 성령의 활동이 지닌 변화시키는 힘을 상징한다. 엘리야 예언자는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집회 48,1). 엘리야는 자신의 기도로 카르멜 산 위 제물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였다.이 불은 닿는 것을 변화시키시는 성령을 상징한다.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온”(루카 1,17)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루카 3,16) 분이심을 선포한다.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우리는 이 말씀 속의 '주님의 길'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중에 하나를 통하여 예수님을 증언하고자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당신 교회("내 교회")의 창립자로써 교회를 당신의 신부로 삼으셨다는 일이다. 신부인 교회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신랑이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이를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문자로써의 신랑과 신부는 누구인지를 잘 안다.

하지만 문자(육적인 언어)로써의 '신랑과 신부'는 그 전부가 아니다. 영적인 의미로써 신랑과 신부는 많은 묵상의 깊은 샘물이 되기도 한다. 신랑과 신부가 결혼하여 한 몸을 이룬다는 가시적인 의미에서부터 그 영적인 의미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그 넓고 깊음에 대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마음이 가난하고 깨끗한 영혼은 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다. 하느님을 볼 수 있고 하느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육적인 사람은 육적인 문자에 머물러 더 이상은 보기가 힘들다 하겠다. ''주님의 길''에서 신부를 사랑하시는 교회를 말하고자 할 때, 당신 교회도 분명히 주님의 길이다고 말할 수 있다. 일찌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했다.

'주님의 길'을 곧게 내고자 한다면 그것은 '교회의 길'을 곧게 내고자 함과 다르지 않다. 신랑은 신부를 돌보시기에 신부는 신랑에게 의지하여 가장 사랑받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교회 자신을 가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비록 어느 때는 추한 모습이라도 신랑께서는 사랑하는 신부의 마음을 살피어 흠없는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에 자신도 더욱 그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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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신부가 '그리스도의 신부'답지 않고 '다른 이의 신부'로 화장을 하고 가꾸었다면 신랑과 신부는 한 몸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당연히 알 수 있다고 본다. 나약한 우리의 추한 모습과 달리 신부의 의지가 '다른 이의 신부'로서 마음이 돌아선 것은 서로 구별되어 다르다고 하겠다. 그리스도와 결합한 '그리스도의 지체'가 아닌, 그리스도의 지체의 반대인 '탕녀의 지체'가 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지체'와 '탕녀의 지체'가 상호 대비되어 기록을 남기고 있을까. 그리스도의 지체는 자기의 몸이 성령의 성전으로써 자기 마음 안에 성령의 주님께서 머무르신다고 가르친다. 성령의 성전은 탕녀와 결합한 탕녀의 지체에게는 합당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탕녀는 거짓된 메세지를 <거짓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하는> 시대의 우상(옛 뱀)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가짜 마리아'이며 그리고 인간의 말에 의하여 정립된 이데올로기로 인하여 생성된 '미륵예수'라고도 말할 수 있는 시대적 '다른 예수'이다고도 할 수가 있다. 그 추종자들은 여기서 이를 부정하며 사람들을 미혹시켜 자기들에게로 이끌어 들이려고 무척 애쓰고 있다 할 것이다.

신랑을 사랑하는 신부, 신랑의 사랑스런 신부가 되고자 한다면 <다름이 아니라 틀린> 이 길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진리 안에서 중단없이 곧게 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신부가 신랑과 한 몸이 되려면 먼저 우리 자신부터 그리스도의 지체답게 깨끗이 몸단장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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