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2 대림 제3주간 월요일 민수24,2-7.15-17ㄹ 마태21,23-27

무욕(無慾)의 지혜

무욕의 사랑, 무욕의 지혜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던 중 문득 떠오른 얼마 전 신문에서 본 그림입니다.

20년 전 제주로 내려간 후 줄곧 제주의 풍광만을 그린

제주 출신 민중미술가 강요배 화백의 ‘별-나무’라는 그림입니다.

수백 년은 됨직한 팽나무 사이로 겨울 총총한 별빛 쏟아지는

황홀한 그림이었습니다.

흡사 무수한 별들이 달린 나무처럼,

또 모세가 본 환하게 불타는 떨기나무처럼 보였습니다.

이어 그림에 대한 설명도 의미심장했습니다.

“별빛이 나무에 쏟아지는 것을 보면 나뭇가지들이

별을 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그냥 나무라는 말은 사실 성립하지 않지요.

별-나무, 빛-나무, 바람-나무처럼 같이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이해할 수 없어요.

그래서 하이픈(-)으로 자꾸 연결해줘야 합니다.”

나뭇잎 다 떨어진 겨울 나뭇가지들을 꽉 채운 푸른 하늘과 빛나는 별들은

바로 텅 빈 충만의 축복 받은 영혼을 상징합니다.

이런 무욕의 영혼들 위에 쏟아지는 하늘의 지혜입니다.

마치 짙은 구름이 사라졌을 때 푸른 하늘 빛나는 태양처럼

무욕의 영혼들을 통해 계시되는 하늘의 지혜요,

바로 오늘 1독서 발라암과 복음의 예수님이 이런 분들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내리자 눈이 열려 신탁을 선포하는 무욕의 영혼,

발라암입니다.

“브오로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의 말이다.

…이스라엘아, 너의 거처가 어찌 그리 좋으냐!

골짜기처럼 뻗어있고 강가의 동산 같구나.

주님께서 심으신 침향나무 같고 물가의 향백 나무 같구나.”

활짝 열린 영의 눈으로

새 이스라엘 교회와 하느님 백성의 아름다운 모습을 내다보는 발라암이요,

마침내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현실화된 신탁입니다.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놀랍게도 먼 훗날 메시아 탄생까지 내다보고 있는 발라암의 예언이요

주님 성탄을 통해 비로소 실현된 신탁의 예언입니다.

무욕의 사람들에 계시되는 하늘의 지혜요 그 자체가 권위가 됩니다.

발라암의 다음 고백에서 그가 무욕의 사람임이 환히 드러납니다.

원수를 저주해 달라고 불렀는데 계속 축복해 주자

이에 화가 난 발락에 대한 발라암의 대답입니다.

“발락이 비록 그의 집에 가득 찰 만한 은과 금을 준다 하여도,

나는 주님의 분부를 어기고서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만 말해야 합니다.”(민수24,13).

오늘 복음의 예수님 역시

무욕의 사람이자 하늘의 지혜를 지닌 분이심이 환히 드러납니다.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권한의 소재를 묻는 적대자들에게

세례자 요한의 권한이 어디서 오는 지,

하늘에서인지 혹은 사람에게서 인지 되물음으로

곤경에서 벗어난 예수님의 천상지혜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대답하자 예수님도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라고

응수하십니다.

귀가 닫힌 이들에게 말한단 들 우이독경이요,

눈이 닫힌 이들에게 말한단 들 돼지에게 진주 던지는 경우가 될 것입니다.

이들이 눈과 귀가 열린 자들이었다면

예수님의 언행이 하늘에서 온 것임을 깨달아

애당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음을, 욕심을 비웠을 때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 계시 되는

천상지혜의 깨달음이요 바로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기도 합니다.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시편25,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