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순종과 불순종의 식별 [믿음과 실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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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이수 | 작성일2011-12-13 | 조회수420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마태오> 아버지의 뜻을 실천 너희는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 지금 우리는 실천과 믿음의 예수님 가르침을 보고 있는 중이다. 살아있는 믿음이란 행동하는 믿음이다고 말한다.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고 다들 잘 알고있는 일이다. 예전에 '믿음의 순종'에 대한 견해를 게시한 적이 있는데 그때, 행동에도 올바른 행동이 있고 그와 반대의 행동이 있다며 '살아있는 행동'과 '죽은 행동'에 대하여 게시글을 올린 것이다. 구별되는 2가지의 행동에 대한 식별에 관한 '믿음의 순종' 글이었던 것이다.
죽은 행동은 아버지의 뜻과 상관없는 행동을 의미하고, 살아있는 행동은 아버지의 뜻과 깊은 연관이 있는 행동이다 할 수 있다. '행동하는 양심'에서도 그 양심이 올바른 것인가 에 따라 행동이 죽은 것과 산 것으로 분별된다 하겠다. 여기서는 올바른 양심의 문제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있는 바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나서 실천과 믿음의 연관성을 식별하는 일이다. 더러는 '아버지의 뜻'에 대하여 눈을 감아버리는 '무리들'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아버지의 뜻'에 눈을 집중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고 본다. '믿음의 눈'은 '신앙의 눈'과 같다. '이데올로기적인 양심의 눈'은 사람의 입장에 따라 그 생각이 서로 다르고 그런 측면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일찌기 '믿음의 순종'에 대하여 견해를 쓴 적이 있다. '아버지의 뜻'과 반대되는 거짓 메세지와 그것에 근거하여 신앙 강의를 펼치는 경우가 있으며, 또한 지극히 이데올로기적인 관념들에 근거하여 신앙 강의를 우리에게 주입시키려는 경우도 허다하게 많다. 신앙, 여기서의 믿음이란 '아버지의 말씀' 곧, 진리에 대한 명백한 의탁이다. "옛 뱀"(교의 헌장 참조)의 입에서 나오는 물(말, 언어)을 받아 마시고 내뱉는 가짜 예언자들의 거짓된 진리에 대한 믿음이 아니고 인간의 이데올로기에서 떨어지는 물(개념)들을 받아먹고 내뱉는 유사한 진리에 대한 믿음도 또한 아니다. 신앙의 믿음은 아버지의 말씀(뜻)에 관한 분명한 믿음인 것이다. 행동 보다도 먼저는 믿음이다. 자기 믿음의 문제에 의해서 자신의 행동이 결정되어진다. 지금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러한 것이다. 행동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말씀하시고 계심이 아니신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 문제에서 근간이 되는 믿음의 문제를 일러주시는 것이다. 행동이 아니라 실천의 가르침은 믿음을 벗어나서 이야기할 수 없다 할 것이다. [실천은 믿음을 실행하는 행동]인 것이다. 거짓된 메세지(및 강의교설)이나 인간의 말인 이데올로기 개념을 바탕으로 자기 양심에 따라 실행하는 것을 가지고 믿음이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극도의 이념을 신앙에 접목시키는 '절충주의'에 입각하면 그것이 마치 더 실천적인 신앙인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아니다. 그래서 이를 식별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누차 글들을 올린 경향이었다 하겠는데 역시 반복되지만 '아버지의 뜻'(하느님의 말씀, 성경)에 대한 믿음이 행동보다도 우선되어져 앞선다는 점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먼저는 믿음이고, 그 다음은 행동이다. 이 행동을 '살아있는 행동'이며 그 반대는 '죽은 행동'이다. 거짓된 메세지, 강의(교설) 및 이데올로기 '절충주의'와 같이 믿음이 아닌 것들에 행동하는 것은 신앙의 실천이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말씀'을 먼저 믿고 그 다음에 믿는 바를 실행하는 실천에 대해 지금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신다고 보아진다. 여기서 한가지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순종이다. 그리고 믿음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불순종이다. 믿음과 행동의 실천에서 순종과 불순종의 식별이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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