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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제의 임무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13 조회수643 추천수2 반대(0) 신고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우스(St. Gregory of Nazianzus, 329-389 or 390)는 나지안즈의 주교였던 아버지(그 당시에는 사제의 결혼이 허락되었다)로부터 361년 성탄절에 강제적으로 사제품을 받았다. 서품식이 끝나자, 그레고리우스는 집을 뛰쳐나가 다시 폰터스(Pontus)로 가서 친구 성 바실리우스(St. The Great Basilius,또는 바실리오)와 함께 지내다가 다음해 부활절에 돌아왔다. 그는 자신은 아직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의 희생제물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제직무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털어 놓았다.
나의 손이 항상 거룩한 일만 하기 전까지,
내 눈이 오직 창조주만 경배하고
피조물을 해치지 않고 느긋하게 바라보는 데 익숙하기 전까지,
내 귀가 주님의 지시를 온전히 들을 수 있도록 열리고 지체 없이 들을 수 있도록
주님께서 내 귀를 열어주시고 금 귀고리와 값비싼 장식을 달아 주시어
지혜로운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해주시기 전까지,
내 입이 성령을 받기 위하여 입을 벌리고 헐떡이고 주님의 신비와 교리를 말하는 성령으로 가득 채워져 지혜로운 말만 하게 되고 때가 되어 못다한 지혜로운 말을 하기 전까지,
내 혀가 기쁨에 넘쳐 영광과 함께 바로 깨어나게 하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때까지 천상의 악기가 되어 노래하기 전까지,
내 발이 바위에 걸려 넘어져 숫사슴 발처럼 되고
내 발걸음이 주님을 향하고 미끄러지지 않게 되기 전까지,
나의 모든 지체가 의로움의 도구가 되고
모든 죽을 것들을 생명이 이기도록 하고 성령에 순응하기 전까지에는,
어찌 내가 감히 어떻게 그분께 영원한 희생제사를 드릴 수 있으며,
사제라는 이름과 직분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Oration Ⅱ, 95 중에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끝까지 낮추신 겸손하신 그리스도를 참으로 깨닫지 못한 채, 누가 감히 사제직에 오를 수 있단 말입니까? … 그리스도와 참된 친교를 맺지 못한 채, 누가 감히 사제직에 오를 수 있단 말입니까?”(Oration II, 98 중에서).
진정한 찬미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선 사제 자신이 먼저 거룩하고 합당한 살아있는 제물이 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당시 아직 그런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사제직을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사제는 영혼을 돌보는 ‘하느님의 사람’이면서 동시에 ‘교회의 종’이다.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종’이 되시어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신자들의 죄를 씻어주고 치유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즉 “사제는 인간의 영혼들을 이 세상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날개를 달아 주어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만일 그들의 영혼 안에 각인된 하느님의 모상이 있다면 그것을 보존해주고, 또 만일 그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면 지켜 주고, 또 흠집이 났다면 성령으로 치유해 주는 운명의 소유자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하느님을 믿도록 하고 천상의 축복을 내려주는 것입니다.”(Oration II, 22 중에서).
 
사제직을 완벽하게 수행하려면 항상 솔선수범을 해야 한다.
“남을 정화(淨化)시키기 전에 먼저 자신을 정화시키십시오. 남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지혜의 가르침을 배우십시오. 빛을 밝히기 전에 먼저 빛이 되십시오. 남을 하느님께 인도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께 가까워지십시오. 남을 성화(聖化)시키기 전에 먼저 자신을 성화시키십시오. 남을 이끄는 손을 갖고 남을 충고하는 지혜를 가지십시오.”(Oration II, 71 중에서).
그가 말하는 완벽한 사제상(司祭相)을 보면, 그레고리우스가 사제품을 받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많은 사제들은 사제서품 때에만 엎드리는 것 같다.
 
옛날의 한 그리스도인 작가가 말했다.
“잘못을 범한 평신도는 이내 잘못을 바로 잡지만
사제(司祭)가 악에 물들게 되면 거의 헤어나지를 못합니다.”
아마 경험에서 우러난 말인 것 같다. 이 작가는 바리사이들이 앞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두고 말한 것 같지만 모든 시대의 모든 성직자들도 바리사이와 거의 다름이 없다는 것을 꼬집은 것 같다. 이 작가가 이어서 말했다.
“자리가 사제(司祭)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제가 자리를 만듭니다.
자리가 사람을 축성(祝聖)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리를 축성합니다.
모든 사제가 거룩하지는 않지만 거룩한 사람은 모두 사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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