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무공해의 삶 - 12.1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
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12-13 | 조회수445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2011.12.13(화) 우리 수도연합회의 수호자 성녀 오틸리아 동정 대축일
이사35,1-4c.5-6.10 1코린7,25-40 루카11,33-36
무공해의 삶을 추구하는 이가 성인이요 수도자입니다.
삶은 눈이 열려가는 개안의 여정입니다. 누구나 주님을 만날 때 눈이 열려 깨달아 알게 되면 각자가 됩니다.
끊임없는 개안의 여정을 통해 점차 이해 지평도 깊고 넓어져 있는 그대로의 전체를 보게 됩니다.
알면, 전체를 봐 알아 가면 판단하지 않고 받아드립니다.
깨달음의 깊이도 천차만별이요 사람 역시 천차만별입니다.
하느님을 만나 큰 깨달음에 이르렀던 각자(覺者)였습니다.
바로 지혜로운 현자(賢者)요 자유인(自由人)임을 깨닫습니다.
세속 한 복판에서 말 그대로 무공해의 자연 같은 삶을 살아가는, 자기 분야에서 깊은 내공을 쌓아 깨달음에 이른 분입니다.
한 분은 양봉에서 일가를 이룬 송 베드로 형제입니다.
특히 송 베드로 형제의 생생한 체험적 고백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휠체어를 탄 불편한 몸으로 건강한 사람 이상으로 부인 골룸바와 함께 35년간 양봉에 전념한 분입니다.
그대로 성인성녀 부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박하고 단순하기가 자연과 하나 된 무공해의 삶이기에 정장한 제 자신이 오히여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새삼스런 만남과 고백을 통해 분명히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정작 무서운 것은 육신의 불구가 아닌 영혼의 불구임을 깨닫습니다.
마음 깊이 와 닿았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승리에 이르기까지 자기와 싸움의 과정은 참 처절했을 것입니다.
“벌의 삶이나 사람의 삶이나 똑같습니다. 꿀벌들은 50일 수명기간 중 처음 10일은 학생의 공부기간과도 같습니다. 집을 보고 지키며 날아다니는 연습을 한 후 10일이 지나면 비로소 일하기 시작하는데 정말 부지런합니다. 꿀 한 방울 모으기 위해 1000송이의 꽃을 찾아다닙니다. 평생 일하다가 수명이 다해 죽을 50일이 다 되면 공동체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벌집에서 멀리 떠나 죽습니다. 약을 먹지 않는 벌 모두가 그렇습니다. 저도 벌의 최후의 모습을 보며 늘 죽음을 준비하며 삽니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구나. 미물이라 하찮게 여길 것이 아니구나, 모두가 배움의 대상이구나.’ 깨닫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깨달아 알아갈 때 겸손이요 자유로움입니다.
송 베드로 형제 는 양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른 각자입니다.
역시 평생 개안의 여정을 살아가는 우리들이요
이사야의 체험은 우리 모두의 체험이 됩니다.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하며 환성을 올려라. …너희가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
마음의 눈 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마음의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립니다.
이 주님과 만남의 기쁨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찬미와 감사입니다.
눈이 맑을 때는 온몸도 환하고 성하지 못할 때는 몸도 어둡습니다. 마음과 몸은 하나입니다.
눈이 맑다는 것은 마음이 맑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 눈이 열릴 때 기쁨으로 맑고 환해지는 마음과 몸이요 건강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만나 눈이 열려가는 여정을 통해 점점 자유로워지는 우리들입니다. 지나가는 세상 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초연한 자유를 누립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7,29-31).
이 개안의 여정에 충실할 때 무공해의 삶이요 주님으로부터 선사되는 기쁨과 건강과 자유입니다.
기쁘고 건강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