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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213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13 조회수339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1년 12월 13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8-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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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이 세상 어떤 사람도 하느님을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느님은 하느님이 허락하신 부분만입니다. 그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어쩔 수 없는 차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하느님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딱 그만큼이긴 하지만 적어도 하느님이 허락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는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신비"라고 불리는 부분은 어떻게 해도 알 수 없는 부분이지만 나머지 공개된 부분을 대해 우리는 궁금해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예수님으로 인해 모두 드러난 사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엔 아직도 하느님의 뜻에 대해 여러가지 이유로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우리가 해야 실천해야 할 삶들에 어떤 어려운 한계가 있다고 느끼는지 그것으로 신앙의 수준을 말하고, 신앙인들 사이의 격차까지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의 윗선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일 수록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하느님의 진리에 정말 수준 차이가 날까요?


예수님을 인정하지 못하는 백성의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이 오늘 또 등장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진리에 가깝다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은 그들로 인해 하느님을 만난다 여겼고, 또 그들 덕분에 하느님에 대해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살아계신 하느님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분이 아는 것, 그분이 느끼는 것, 그분이 사시는 것 모두 하느님의 것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완전히 무시당하시는 하느님. 과연 하느님이 사람에게 가르치신 진리가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내용인지 에 대해 예수님은 단적으로 잘라 표현하십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말입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그가 맏아들인지 다른 아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가 아버지의 뜻을 알아듣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아들의 구분점은 아버지의 뜻을 이해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 뜻을 실천했으냐라는 확실한 기준점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은 이들의 속내가 드러나는 순간이며,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두고 예수님이 정곡을 찌르시는 장면입니다.


전날 예수님을 인정하지 못하던 이들이 세례자 요한의 인기를 어쩌지 못해 스스로 그의 권한을 "모르겠소"라고 대답한 이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들이 무시하는 예수님과 어울렸던 이들이 아버지의 뜻에 응답함으로써 어떤 자리에 서게 되는지 스스로 고백하고야 맙니다. 정말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이를 아버지의 말씀에 처음 거절했으나 마음을 돌렸던 "맏아들"이라고 대답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맏아들입니다."



이 한심한 믿음의 장본인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의 허물을 계속 들춰내심이 아니라, 그래도 그들이 두려워하는 이를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십니다. 당신은 모르고 무시하더라도 그들이 존중하고 두려워하는 이의 소리에라도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십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요한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우리가 믿는 신앙이란 알고 있는 지식으로 그 삶이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하느님의 뜻이란 세상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인생을 위해 주어지는 것이지 지식 습득을 위해 하느님이 내리시는 숙제나 시험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실천을 통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계속 하느님의 뜻이 어렵다 뒷걸음질치고, 혹은 하느님의 뜻의 심오함을 핑계로 현실에서 실천하지 않는 글로 굳어버린 하느님을 믿고 사는 이가 있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그에게 있는 그대로 실현되고 말 것입니다. 삶에서 어쩌면 실패했다고 단정받는 사람들, 실수가 아닌 잘못의 큰 과오가 있는 사람이라도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마음을 돌려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들이 천국의 주인공이 된다고 한 들 그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성탄, 그리스도는 우리를 골라내려 오신 분이 아니셨음을 기억합시다. 사제와 원로에게 무시당할 만큼 우리와 너무나도 같았던 예수님의 말씀에 마음을 열고 우리의 삶을 다시 바로 잡는 대림절을 보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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