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2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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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현 | 작성일2011-12-14 | 조회수327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1년 12월 14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8ㄴ-23 그때에 요한은 자기 제자들 가운데에서 두 사람을 불러 주님께 보내며,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쭙게 하였다. 그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저희를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이 말씀은 왠지 익숙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한 토마스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씀과 겹쳐지는 이 말씀. 그러나 이 말씀을 들은 이는 생각지도 못하게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했던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가 아니라 말하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로 소개하며 살았습니다. 그가 광야에서 살며 보통사람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사는 것을 두고 사람들은 미쳤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삶에서 묻어나오는 하느님의 이끄심을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회개를 외치고 요르단강으로 불렀을 때 많은 이들은 그에게로 가서 죄를 씻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이 예언하던 분을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을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난 자리는 세례를 베푸는 자리, 곧 죄인들을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죄인들 무리에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의 생각대로라면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증언하고 나서 예수님을 따랐어야 합니다. 그가 기다리던 분이 오셨으니 그의 역할은 끝났다고도 볼 수 있으며, 아니라면 적어도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기 위해 그분의 제자가 되는 것이 바른 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이 그러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내용은 다소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상식을 처음부터 벗어나 있습니다. 그때에 요한은 자기 제자들 가운데에서 두 사람을 불러 주님께 보내며,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쭙게 하였다. 하느님의 징표를 통해 예수님을 만난 세례자 요한이지만 그는 격식은 갖추되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확실한 증인이 될 두 제자를 시켜 예수님께 여쭙게 합니다. 그 내용은 당신이 바로 그분이십니까? 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였던 세례자 요한은 그분을 만났지만 다시 묻고 있습니다. 신중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께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의 생각에 예수님이 "과연"이라는 정답이 아니었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만약 예수님이 하늘을 열고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티도 흠도 없는 지극히 고귀한 분으로 그러한 자리에 앉으셨다면 세례자 요한은 주저없이 그분을 따랐을 것입니다. 그래야 그분의 신발끈 위치를 제대로 인정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 사이로 요한을 보러 오셨고, 요한 앞에서 직접 요르단 강물에 몸을 담그셨습니다. 죄인들 속의 하느님은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고민과 주저함은 신중이 아닌 그가 하느님의 뜻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의 생각에 당신의 삶이라는 답을 내어 놓으십니다. 죄인들 사이의 하느님은 무엇을 하시는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죄를 씻어라 이야기했던 세례자 요한, 그리고 그가 먼저 세상을 떠나 하느님만을 의지하며 살았던 터라 그가 말하고 생각했던 하느님은 예수님의 모습과 어떤 면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생각이 눈 앞의 예수님을 놓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거룩하시다라는 말과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이 겹쳐지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세례자 요한은 혼란스럽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의 모든 고민들을 한 말씀으로 정리해버리십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세례자 요한이 주님을 의심했다는 것은 분명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누구의 짐작이 아닌 예수님의 말씀에서 나왔다면 그것은 분명 세례자 요한의 상태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이런 편견은 없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주님을 예언한 사람조차 사랑의 주님 앞에 어쩌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은 우리도 어쩌면 거룩함에 대한 생각이 주님을 몰라볼 수 있는, 그리고 의심할 수 있는 편견의 열쇠가 될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죄인들 사이에 예수님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고, 그분의 모습 속에서 참 하느님의 사랑을 세례자 요한이 깨닫고, 배웠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답이 전해지기도 전에 그는 감옥에서 그의 마지막 인생을 보냈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하느님을 진정 알고 있는지요. 아니면 우리도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하고 가장 고귀하신 분으로 하느님을 생각하며 저 높은 곳만을 향해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렇다면 우리 역시 우리 앞에 나타나신 하느님을 몰라볼지도, 의심할지도 모릅니다. 성탄은 그렇게 모든 성스럽고 거룩하고 고귀한 편견을 뒤집고 평범한 우리 안에 일어났음을 믿어야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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