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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215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15 조회수32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1년 12월 15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4-30

요한의 심부름꾼들이 돌아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은 백성은 세리들까지 포함하여 모두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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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종잡을 수 없는 예수님의 말씀. 그 속에서 첫 대림과 첫 성탄의 느낌을 읽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예언한 세례자 요한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기다리게 한 사람입니다. 세상의 심판자께서 오시니 모두 죄를 뉘우치고 깨끗하게 그분을 맞이하라 외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보면서 하느님의 모습을 생각했고 그보다 훨씬 더한 권능과 품위를 지닌 분이 오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을 가진 분이 오시리라 말입니다.


그러나 정작 하느님은 요르단 강에 나타나셨고 죄인들 사이로 오셨습니다. 그것을 예언한 이는 보고도 믿지 못합니다. 하느님이 가르쳐주시는 징표도 보았고 그분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분 앞에 한 껏 겸손도 드러냈지만 그분과 헤어진 후 이 예언자는 예수님에 대한 의문을 품습니다.


기다린 분이 맞는가? 그가 보낸 두 제자는 아마도 그분이 참 주님이심을 증언할 사람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어김 없는 가짜를 증언해줄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과 이루시는 일들을 보고 돌아간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에게 어떤 말을 전했을까요? 한 눈에 하느님의 사람임을 알아 볼 만큼 강렬한 인상의 세례자 요한이 아무리 보아도 혼란스러운 실제 주님을 떠보기 위해 제자들을 보낸 것을 상상하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봅니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세례자 요한의 상상치 못한 모습을 보았다고 해서 그가 이룬 사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요한의 이런 모습은 그가 하느님에 대해 얼마나 순수하게 충실했는지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점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얼마나 빈약한 정보를 지니고 있는지 가장 위대한 이를 통해 말씀해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의 혼란스러움이나 의심이 그를 욕되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그는 누구보다 본분에 충실했고 그의 진심은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잘 몰라서 더 강하고 더 엄숙하게 그 자신도 사람들도 준비시킨 듯 보입니다.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은 백성은 세리들까지 포함하여 모두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



그럼에도 그렇게 순수한 사람의 이야기조차도 듣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마음과 명예욕과 권력으로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이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전하는 하느님이시라면 적어도 듣고 판단이라도 했어야 하지만 결국 그들에게 더 중요했던 것은 자신들의 고고함이었던 겁니다.



한 이틀 하루가 끝나는 시간에 초재기를 하면서 복음 묵상을 합니다. 대림절... 지나버린 하루를 되돌아 보며 복음에 맞춰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인 듯 싶습니다. 각오하고 사는 하루와 돌아보는 하루를 주님 말씀으로 돌아보는 것. 어떻게든 의미 있는 듯 싶습니다. 게으름으로 생긴 일이지만 말입니다.


성당마다 판공 소식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세례자 요한에 놀라서 요르단강으로 뛰어드는 이들 만큼의 순수함으로 대림절을 보낼 수만 있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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