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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16 조회수878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12월 16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I have testimony greater than John's.
The works that the Father gave me to accomplish,
these works that I perform testify on my behalf
that the Father has sent me.
(Jn.5.36)



제1독서 이사야 56,1-3ㄴ.6-8
복음 요한 5,33-36

며칠 전, 인천교구의 대학원 2학년 학생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신학생이 지난여름에 있었던 복지병원에서 봉사하면서 체험한 것을 이야기했지요.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분이 너무나도 좋아졌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 병원을 담당하는 신부님과 매일 미사를 함께 봉헌했는데, 신부님께서 강론 시간에 제가 쓰고 있는 ‘새벽을 열며’ 묵상 글을 인용하시며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빠다킹 신부님의 강론입니다.”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요즘 저작권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저 역시 저의 저작권을 내세울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누가 저의 글을 쓰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신학생들이 봉사했던 그 병원을 담당하는 신부님은 제가 신학생 때 영성지도를 맡아주셨던 은사 신부님이십니다. 제가 너무나도 존경하고 또한 사랑하는 신부님이신데, 그 신부님께서 황송하게도 저의 부족한 글을 당신의 소중한 강론시간에 쓰신다고 하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여기서 이러한 상상을 해 봅니다. 만약 저의 묵상 글을 저의 경쟁 상대가 쓰고 있다면 어떨까요? 특히 제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며,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사람이 저의 글을 쓰고 있다면, “왜 이 사람은 남의 강론을 그냥 베껴 먹는 거야?”라면서 그 사람을 비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 자신이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마음 역시 바뀔 수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주님께서 나를 쓰시겠다면 어떨까요? 그때에는 나의 모든 것을 다 쓰신다고 해도 기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것에 대한 관심과 사랑, 또한 주님께 대한 믿음의 부족으로 내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우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복음 역시 예수님을 잘 준비한 세례자 요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에 비유하시지요. 그는 철저하게 주님께 자신을 모두 봉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미친 사람으로 평가될 정도로 극도로 금욕적인 삶을 살았고, 더불어 주님을 잘 맞이하기 위한 세례를 사람들에게 베풀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어떤 화려함이나 편함을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자신을 쓰고 계심 그 자체로 그는 만족해했고 행복해했습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우리를 쓰시겠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재산이 없다면서 거절하고, 능력이 없다면서 거절하는 모습 등으로 주님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되어 있는 상태에서 당신을 따르기보다는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당신을 따르는 모습을 더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들에게 당신의 한없는 은총과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더 이상 거절하지 말고 이제는 주님의 부르심에 철저하게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한 응답이 대림을 잘 사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자신에게 진실하라. 당신이 진실하게 행동한다면 누구도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리라.(윌리엄)




아저씨! 내려요.

이스라엘의 세례자 요한 경당

비도 오고 차도 밀리고 아침 출근길은 짜증스러웠습니다. 버스가 문이 닫히고 출발을 하자 여자 한 명이 소리치는 것입니다.

“아저씨, 내려요!”

하지만 기사 아저씨는 묵묵부답입니다. 많은 사람들 때문에 내리지 못했던 여자 승객은 또 다시 한번 소리쳤지요.

“아저씨, 내려요!”

그러자 기사 아저씨가 버스를 세우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해요.

“아저씨가 내리면 이 버스 운전은 누가 합니까?”

이렇게도 이해할 수 있겠지요? 말이란 이렇게 불완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서 사용하고, 잘 이해하도록 더욱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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