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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216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17 조회수304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1년 12월 16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3-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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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요한의 증언 다음에 서 계신 예수님은 요한의 증언을 사실로 이야기하시면서도 요한이 모두 다 알지 못한 하느님의 진리에 대한 증언을 하십니다. 그럼에도 요한이 한 역할이 모두에게 구원의 꿈을 꾸게 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확인하십니다. 그는 그의 사명에 충실했고 그를 통해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에 대해 다시 눈을 뜨고 새로운 삶을 준비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이란 단어가 누구나의 입에 익숙해진 때, 그 때 오히려 하느님은 진실이 아닌 사람들의 익숙함과 이기적인 삶의 태도로 무뎌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지극히 이기적인 자신의 계산 속에서만 신앙이 이루어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누군가 하느님의 말씀을 이야기하며 하느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이는 사람들에게 잊었던 기억과 몰랐던 깨달음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자극으로 인해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게 되고 자신 안에 두었던 하느님이 너무 멀리 떨어져 계심을 느끼게 됩니다.


놀란 깨달음 만큼 사람들은 그 깨달음을 준 이 곁으로 달려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집니다.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계기는 그렇게 우리의 삶 한 가운데에서 몇 차례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자신의 삶에 큰 햇살처럼 크게 느껴지고 그 감정은 불기운과 같이 뜨겁습니다.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길을 찾았다는 확신도 듭니다.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이 찾는 것은 계기에서 넘어서서 발견됩니다. 요한의 뒷 편, 요한 조차 짐작못한 하느님의 진심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떨어져 찾으려 했던 하느님은 어느새 자신의 삶 속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너무 익숙해서 변하기 쉽지 않은 고정되어 버린 생활, 그래서 그 속에서 삶의 이유로 당연하게 생각한 모든 질서와 사람 관계들. 그것은 하느님과 상관 없는, 너무나 먼 얘기라고 생각하는 그 공간안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요한을 넘어서면 또 어떤 이상적인 환경이 펼쳐질까 기대한 모든 상상이 깨어져 버린 이 상황은 적잖이 당황스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상황을 분명한 당신의 뜻으로 증언하십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모두가 광야에서 하느님을 찾으려 했으나 하느님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계셨고, 요한에게서 신앙의 모델을 찾으려 했으나 그 모델은 자신들의 삶의 틈바구니에 있었습니다. 골라내고 골라내어 살아남은 이가 승리하는 성인을 바랬으나 모든 죄인들을 살려내는 것이 하느님이 바라신 뜻이요, 하느님의 성인의 할 일이었습니다.

지긋지긋하고 희망이 없는 삶의 틈바구니, 그렇고 그런 판단이 끝나버린 이들 안에서의 구원이 선포되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기대도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느님의 진실은 그렇게 우리 안에 와 있었던 것입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나와 사람들을 광야로 이끌며 삶에서 나오도록 요구했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죄를 씻어 그분의 오심을 준비하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세례를 받고 사람들이 다시 죄를 짓기 싫어 돌아가기 주저한 그 싫은 삶 안에 주님이 계셨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예수님은 당신을 증언하십니다.

그것이 세례자 요한으로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구원의 표징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잠시 떨어져 자신을 돌아보고 안도를 느낀 사람들이 가진 마음의 여유와 하느님에 대한 각오가 요한이 차지하는 신앙의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시 일상에서 하느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성탄을 준비하며 각 성당에서는 구유를 만들기에 한창입니다. 그 구유는 우리가 다시 돌아온 삶의 현실에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하느님도 모르는 공간이라 부르며 성당을 찾을 때, 그 한 구석 사람이 차지할 수 없는 곳으로 하느님이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라 예수님은 증언하십니다.


성탄의 의미. 그래서 우리의 삶의 자리를 더욱 소중히 하고 그 안에서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 안에 하느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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