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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217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17 조회수306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1년 12월 17일 대림 제3주간 토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7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이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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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이다.



드디어 이천 년 전의 예수님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족보. 사실 예수님의 가치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족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저 예수님이 정말 사람이 되셨다는 증거로 내밀기 위한 것일까요? 역사를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이 족보는 또 다른 분란의 소재가 됩니다. 다른 내용의 족보가 있으니 말입니다.

이야기를 처음 기록한 이들이 예수님의 존재에 대한 증빙이 될 만한 문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대비가 있었을까요? 아무리 미화하려 해도 거칠고 투박하게 쓰여진 복음 속에 예수님은 그저 사람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오심은 어느날 갑자기 특별한 과정으로 특별히 존귀한 탄생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을 떠났던 사람에게 너무나 조심스럽게 다가오셨던 하느님, 결국 하느님은 세상을 다시 찾으실 과정으로 당신의 힘과 권능이 아닌 포기할 수 없으신 사랑의 흐름을 따르셨습니다. 당신을 스스로 떠났던 사람 안에서 돌아올 희망을 보고 싶어하시는 하느님, 그리고 그 희망을 믿으시는 하느님은 멀고 먼 역사를 통해 사람에게 다가오셨고 사람이 보여주는 딱 그만큼의 희망에도 기뻐하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구원의 현실을 조금씩 이루어가셨습니다.


한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었던 하느님이셨지만 그분에게 희망을 드린 첫 사람 아브라함에게서 끝도 없는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느 사람과 다름이 없는 사람. 그래서 당연히 욕심도 있고 다툼도 있는 사람의 삶 속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것에 대해 하느님께 돌릴 수 있는 사람의 마음 하나에 구원의 희망을 싹이 텄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그리고 숱한 싸움과 독립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쌓아올린 최고의 사람 사울왕의 기대 속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던 양치기 소년, 다윗에게서 하느님은 또 다시 그 구원을 꿈을 심으셨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그리고 여전한 사람의 역사 속에 다윗의 후손이 결국 세상을 구하게 되리라는 희망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결론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족보에 적혀진 그 숱한 이름의 역사 만큼 하느님의 기다림과 사람의 기다림은 함께 있었고, 또 그렇게 먼 듯 가깝게 하느님과 사람은 함께 사랑을 통해 있었습니다. 족보는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자 그 오랜 기다림에 들어 있는 모든 구원 역사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 이름 하나에 담긴 그 삶의 모든 것이 곧 구원의 역사였으니 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대한 관심도 사랑도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이렇게 우리 위에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대림초가 의미하는 사천년은 그렇게 예수님을 기다린 사람과 하느님의 바람의 길이를 나타냅니다.


이제 마지막 초가 켜졌으니 우리의 기다림은 우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깨달을 때입니다. 성탄은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때 보다 서로 사랑하는 성탄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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