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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삶의 문장(文章)’의 주어(主語)는 하느님이시다 - 12.1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19 조회수391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1.12.19 대림 제4주간 월요일 판관13,2-7.24-25 루카1,5-25

 

 

 

 





‘삶의 문장(文章)’의 주어(主語)는 하느님이시다

 

-멘토냐 꼰대냐?-

 

 

 

 




삶의 문장에 하느님 멘토를 주어로 할 때

우리도 이웃의 멘토가 될 수 있지만,

내가 주어가 될 때 나는 꼰대나 독재자 혹은 사탄이 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재미있게 읽은

‘주간경향 편집장 윤 호우’ 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꼰대와 멘토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꼰대의 대표적인 특징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한다는 것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어법이 대표적입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자신의 말만 하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도통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항상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댑니다.

‘자신이 하면 로맨스,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식입니다.

그래서 꼰대는 늘 입으로 실천하지만, 멘토는 몸으로 실천합니다.

지금 당신은 꼰대입니까? 멘토입니까?-

 


이대로라면 예수님은 멘토요

입으로 실천한 바리사이와 율사는 꼰대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의 문장에서

주어는 우리의 유일한 멘토인 하느님이십니다.


성인들의 삶의 문장에 늘 주어 멘토로 자리 잡고 계신 주님이셨습니다.

주님을 멘토로 모신 성인들은 또한 우리의 멘토가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유일한 멘토이신 주님과 또 많은 멘토 성인들을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게 우리 가톨릭교회의 자랑입니다.

 


하느님을 삶의 문장에 주어 멘토로 모신 사람들은

늘 “하느님께서…하셨다”로 말하는,

중심을 하느님의 자리로 비운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들이 하느님을 닮아 이웃의 멘토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삶의 문장에 ‘나’를 주어로 한 사람들은

교만할 사람들이요 필시 꼰대나 독재자, 혹은 악마가 될 수 있습니다.


도대체 중심에 ‘나’로 가득 차 있으니 하느님이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세월 흘러 나이 먹어 갈수록 깨어 멘토 하느님을 모시지 않으면

보수화 되어 꼰대가 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예수님이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기 망정이지 70-80나이에 돌아가셨다면

꼰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부질없는 상상이요 그렇게 사셨다 해도

분명 꼰대가 아닌 멘토로 사셨을 것입니다.

 


누가 성인입니까?

삶의 문장에 주어는 멘토 하느님임을 절감하여 늘 삶의 중심에 계신

하느님 멘토에 귀 기울여 듣고 순종의 삶을 산분들입니다.


평생 멘토 하느님 을 찬미하며

알렐루야의 삶을 살다가 감사하며 아멘으로 삶을 마친 성인들입니다.


하여 우리는 성무일도를 마칠 때 마다

‘주님을 찬미합시다.’ ‘주님을 감사합니다.’계응송으로 끝맺습니다.


오늘 복음의 즈카리아‧엘리사벳 부부와 독서의 마노아 부부는

삶의 문장에 하느님 멘토를 모시고

한결같이 제 삶의 자리에 충실했던 겸손한 분들이었습니다.


다음 즈카리야 부부에 대한 묘사입니다.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 낳은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하느님은 이런 삶의 중심을 텅 비워 하느님을 멘토로 모시고

항구히 살았던 거룩한 부부에게 요한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마노아의 아내나 즈카르야의 아내 엘리사벳은 참 기구한 여인들이었지만

하느님을 삶의 문장에 주어로 모시고 살았기에

득남함으로 축복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모전자전입니다.

가장 하느님을 닮은 멘토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라는 명칭보다 위대하고 거룩한 명칭은 없습니다.

훌륭한 자녀 양성에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엘리사벳의 하느님 체험은 얼마나 절절했는지요.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엘리사벳의 이런 하느님 체험이

요한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키워내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저 역시 깊은 믿음과 인내로 자녀교육의 어둔 터널을 잘 통과해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 낸 여러 어머니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어머니에 그 자녀입니다.


하느님을 멘토로 모시고 항구히 살아갈 때

부모 역시 자녀들의 멘토가 되어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 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주는 가르침입니다.

 


매일의 이 복된 미사시간,

우리의 영원한 멘토이신 주님을 마음 깊이 모시는 시간입니다.

 


“떠오르는 태양이 높은데서 우리를 찾아오시어,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루카1,78-79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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