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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20 조회수926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12월 20일 대림 제4주간 화요일



Behold,
I am the handmaid of the Lord.
May it be don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Lk.1.38)



제1독서 이사야 7,10-24
복음 루카 1,26-38

한 남자가 밤에 산책을 하다가 가로등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뭔가를 찾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찾고 있는 지를 물었지요. 그러자 자동차 열쇠를 찾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산책을 하던 남자는 이 사람이 자동차 열쇠를 잃어버려서 얼마나 속이 상할까 싶어서 함께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열쇠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것입니다. 산책하던 남자는 몇 분 후에 물었습니다.

“열쇠를 여기서 떨어뜨린 게 확실합니까?”

열쇠를 잃어버린 사람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실은 이곳이 아니라 한 블록 뒤에서 떨어뜨렸습니다.”

같이 열쇠를 찾아주던 남자는 황당했지요. 이곳에서 떨어뜨린 것이 아니라면 열쇠를 찾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왜 여기서 찾고 있는 거죠?”

그러자 이 사람은 대답합니다.

“불빛이 비치는 데가 여기니까요.”

불빛이 비치는 곳이라고 해서 잃어버리지 않은 곳에서 열쇠를 찾는 어리석은 이 남자의 모습에 웃음만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들 역시 이러한 모습을 간직하며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에 결코 행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것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또한 성인 성녀들이 주님 안에서만 행복이 분명히 있다고 말씀하셨으며 당신들의 삶을 통해 증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주님 안에 머무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들의 모습이 앞서 이야기했던 잃어버리지 않은 곳에서 열쇠를 찾는 어리석은 남자와 무엇이 다를까요? 우리 역시 어리석음을 간직하면서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만 머무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주님 안에 머무르는 것이 손해인 것처럼 또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닌 불행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유한하고 부족한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기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성모님 역시 예수님 잉태 소식을 들을 때 그러했지요. 인간의 이해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예수님 잉태 소식. 그러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가능하며 하느님 뜻에 철저히 따라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하셨기에, 주님의 어머니 그리고 우리들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행복을 찾고 있나요? 주님 안에서 행복을 찾는 지혜로운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믿는 대로 보지 말고 보이는 것을 믿어라(아인슈타인).





완벽한 배우자

이스라엘의 성모영보성당

어떤 형제님께서 완벽한 아내감을 찾아 오랜 세월을 헤맸다고 합니다. 외모도 또한 마음도 아름다운 아내, 능력 많고 성격도 좋은 아내, 사랑으로 가득한 아내.... 딱 한 번 결혼할 배우자는 완벽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드디어 완벽한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렇다면 이 둘은 결혼에 골인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하네요. 왜냐하면 이 완벽한 여자 역시 완벽한 남편감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들은 완벽한 사람을 원합니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을 원한다면 스스로 먼저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상대의 욕구를 내 욕구처럼 배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상대방도 나를 배려하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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