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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220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21 조회수317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12월 20일 대림 제4주간 화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6-38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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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이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구원이란 말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고 있지만 천국에 가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 우리 눈에 드러난 사건이 바로 성탄입니다. 우리에게 오신 하느님의 말씀의 이름이 '구원'이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우리에게 성탄은 지극히 거룩한 분의 탄생으로 되어 있지만 그분의 탄생의 모습들을 살펴보면 하느님께 우리가 바라는 구원이 얼마나 불가능한 것인지, 또 그 불가능이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지 과정 모두가 들어있는 듯 보입니다.

오늘 복음은 몇 차례 반복해서 살펴보게 되는 예수님의 잉태장면입니다.

하느님은 천사를 나자렛에 보내십니다. 예언을 찾아보고 또 찾아보아 어떻게라도 끼워맞춰 보고 싶어도 구세주의 탄생지 조차 되지 못하는 동네, 그래서 그 속에서 나온 인물이 하느님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놀랍기만 한 동네에 천사가 찾아듭니다.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찾은 인물은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는 한 처녀였습니다. 그녀의 고백처럼 누군가의 짝으로 정해진 운명, 그러나 아무런 조건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다고 말하지만 하느님의 일은 언제나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는 아득히 높은 곳의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리는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 조건을 갖춘 최고의 도시, 그리고 하느님을 품에 안을 간택된 이는 최고의 사람이어야 마땅합니다. 감히 엄두도 못내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절대적인 거룩한 선택의 백성들이 모여 산다고 말하기에 부끄러운 조그만 고을의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처지의 처녀에게 천사의 방문과 하느님의 일은 이루어집니다.


이 잉태 사실을 두고 구원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이를 하느님께서 가장 깨끗하게 잘 준비시켰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 역시 우리가 고백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함께 생각해보면 이런 조건의 도시에 이런 조건의 사람에게 하느님이 오신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생각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어났지만 전혀 가능하지 않아야 하는 일. 그것을 우리는 기적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적은 인간으로서 가능하지 않은 일이지만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구원이라는 사건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조건에서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사람이라면 하느님을 누구나 닮았다는 말을 긍정을 하면서도 늘 뛰어난 이를 찾아 하느님의 모습을 찾으려는 시도와 가장 숙련되고 성숙한 이를 찾아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를 찾아내려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무시하고 버리는 이들 가운데 하느님이 찾아오심이 하느님의 기적이요,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일이 일어난 구원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도시에서 자란 이가 세상을 구하게 되리라는 것이 우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 넘어로 우리를 이끌어 천국으로 데려가시는 하느님의 구원의 참 진리라는 것을 예수님의 탄생 자체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구원이라는 말은 도움이 있어서 가능하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한계에 놓여진 불가능의 존재들이고 하느님께서만 가능하신 일을 그분이 손을 잡아 주셔서 구원을 일어난다 말합니다.

이 구원이 우리에게 오실 때 그 기준이 우리가 생각하는 최상과 최고의 기준이 아니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줍니다. "아무나", "누구나"라고 불릴만한 범주의 동네에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한 인생에 하느님을 심어주심이 그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를 우리는 입으로 이제껏 늘 외치게 되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입니다.


성탄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성탄 사건에서 아기 예수님의 구유를 강조하고, 성모님의 동정 잉태를 강조하는 것은 그래서 더 즐겁고 행복한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성탄의 사건 속에 대단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우러러 볼만한 사람 하나 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종이라 말하는 이에게 천사는 말 없이 만족하며 떠나갑니다. 그리고 그 종의 몸 속에 구원이 자리합니다. 참으로 복된 밤입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기적, 구원이 우리에게 온 밤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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