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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21 조회수1,022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12월 21일 대림 제4주간 수요일




Blessed is she who has believed
that what the Lord has said to her will be accomplished!

(Lk.1.45)




제1독서 아가 2,8-14
복음 루카 1,39-45

어제는 2011년도의 마지막 성소후원회 미사가 있었던 날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수고하신 성소후원회 회원들에 대한 시상과 함께 성소국에서 준비한 많은 선물을 나누었지요. 그런데 평소보다 상당히 많이 오신 것입니다. 성당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후원회 회원들이 오셔서 성소국에서 준비한 선물이 부족한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온갖 불평불만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지게 되었지요.

겨우 달력 하나인데 이 달력을 못 받았다고 화내시는 모습, 시상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모습 등등……. 한 해의 마지막 모임을 정신없이 그리고 화려하게 치룬 것 같습니다. 물론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서 일어난 것이지만, 이렇게까지 화를 내셔야 할까 싶었습니다.

사실 별 것 아닌 것으로 인해 우리는 얼굴 붉힐 때가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얼굴 붉힘으로 인해 과연 누가 더 이득을 보겠는지를 따져보세요. 자신에게 이득이 돌아갈까요? 얼굴 붉히면서 말하면 기분이 마냥 좋아질까요? 또 상대방은 그러한 소리를 듣는다고 기분 좋아할까요?(하긴 욕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있어서 좋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다툼을 듣고 있던 주변 사람들은 또 어떨까요?

어떤 사람이 토요일 바쁜 저녁시간에 식당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 않아서 점점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바탕 화를 내고 식당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이 모습의 결과로 배고픈 토요일 저녁을 맞이해야 했지요. 화를 낸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럴 때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음식을 만드는 사람, 주문받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음식을 제공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내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말하면 되는 것이지요.

조금만 생각하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나’에게 기준을 맞추다보니 화를 내고 싸우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만 자기를 낮추고, 조금만 상대방을 생각했으면 합니다. 그때 이 세상은 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찾아가십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잉태했을 때였고, 엘리사벳은 늦은 나이에 세례자 요한을 잉태하고 있을 때였지요. 성모님께서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래도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잉태하셨는데, 굳이 엘리사벳을 찾아갈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런데 엘리사벳 역시 자신이 손윗사람이지만 겸손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이렇게 상대를 위한 배려의 마음이 아름다운 만남을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많은 만남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을까요? 혹시 ‘나’한테만 기준을 맞춰서 화내고 싸우는 만남만을 계속하는 것은 아닐까요?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다만 우리는 닫힌 문을 너무 오래 바라보느라 열린 문을 보지 못할 뿐이다(헬렌 켈러).




하하하하 그냥 웃지요(엔소니 드 멜로, ‘일분 헛소리’ 중에서)

성모님과 엘리사벳의 만남

어떤 자매님 둘이 대화를 합니다.

“딸이 시집을 갔다면서요. 딸은 잘 사나요?”

“귀염둥이 내 딸, 복덩이 내 딸은 시집을 잘 갔어요. 사위가 어쩜 그리 착한지! 내 딸이 차가 필요하다고 하니 차를 사 주고, 보석을 원하니 보석을 사주고, 집안 일이 힘들다고 하니 가사도우미를 둘씩이나 붙여주고, 아침은 사위가 침대까지 날라다 주고, 내 딸은 점심때까지 실컷 잔다우. 사위가 아주 점잖은 귀공자라니까! 호호호”

“아참 댁에 아드님도 하나 있지 않나요?”

“아이고 불쌍한 내 아들! 내 아들은 골칫덩어리랑 결혼을 했어요. 며느리가 어쩜 그리 게으른지! 내 아들이 며느리에게 차도 사 주고, 보석도 사주고, 며느리가 집안 일이 힘들다고 하니 가사도우미를 둘씩이나 붙여주고, 아침은 아들이 침대까지 날라다 준다는구먼, 아내라는 사람이 남편 출근하는 것도 모르고 점심때까지 쿨쿨 잔다우. 세상에 며느리가 아주 게으른 곰탱이라니까! 흥!”

어떤 입장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의 마음. 반성해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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