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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221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22 조회수317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12월 21일 대림 제4주간 수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9-45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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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기적의 두 여인이 만나는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모든 부분에서 서로 닮아 있는 마리아와 엘리사벳, 그러나 또 전혀 다른 두 여인의 모습입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서로 같은 처지의 여인들, 그러나 지금 이들은 가장 어린 어머니와 늙은 어머니로서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인생에서 이제 첫 걸음을 내딛어야 하는 어린 마리아와 인생의 마지막에 이제는 인생을 정리하고 하느님 앞으로 가야 할 막바지 길에 선 엘리사벳입니다.

두 사람은 기적적인 임신으로 하느님의 일을 잉태한 채로 만납니다. 그러나 한 쪽은 하느님의 일에 믿음으로 화답하였고, 한 쪽은 믿음을 두지 못하였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완성된 사람의 모습인 엘리사벳, 그러나 신앙에 있어서는 어린 마리아가 완성된 모습에 가까워 있습니다. 나이 든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하는 인사는 그렇게 엇갈린 두 사람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서 정말 눈에 띄는 모습은 성모님의 모습입니다. 성탄의 앞에서 만나는 성모님의 모습은 그분에 대한 칭송을 넘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것은 나이 어린 이가 나이든 사람에게 인사하고 출산을 돕는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뱃속에 누가 있느냐의 문제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선에서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을 찾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른에게, 혹은 하느님에게 어리고 부족한 사람이 찾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으로 보면 분명 이 모습은 어울리지 않고 잘못된 예의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에 나신 후에도 이 관계를 반복하십니다. 하느님이 사람을 찾으러 다니는 풍경이란 말입니다.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관계의 역전은 그렇게 예수님 이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셈입니다. 요즘도 우리는 배고픈 사람이 찾아가야 사랑도 은총도 얻을 수 있다고들 말하는데 주님은 이미 어머니 때부터 이 관계를 뒤집어 보여주신 셈입니다. 당사자인 엘리사벳에게 성모님의 방문은 놀라운 경험을 가져 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직감적으로 예수님의 방문을 느낀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는 아들이 요르단강에서 예수님을 향해 증언했듯 큰 소리로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이야기는 분명 마리아를 향해 있으나 그 내용은 태어날 분으로 인해 일어난 변화에 대한 증언입니다. 그리고 모든 관계가 다시 성립합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가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라는 인사는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 드렸던 말씀과 동일하며 아들로 인해 서로의 관계가 뒤바뀌어 버립니다. 오히려 인사드려야 할 사람이 인사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일에 대한 마리아의 태도에 대한 칭찬이 이어집니다. 하느님의 일에 걸림돌이 되지 않은 순수한 믿음의 사람이 오히려 인생의 완성을 목전에 둔 사람보다 훌륭하다는 이 증언은 우리가 기준으로 삼는 연륜마저도 단숨에 뒤집어 버립니다.


사람들에게 다가오시면서부터 늘 먼저 다가오셨던 예수님의 모습, 그리고 예수님의 인사는 그분을 알게 하려는 목적이 아닌 사랑이 필요한 곳에 사랑이 되려 오셨습니다. 거의 모든 부분에 사람을 안심시키고 평화를 주시며 필요한 도움이 되신 것이 주님의 오심이었습니다. 그분은 기다림이 없으셨고 늘 움직이며 흐르셨고 그 곁에 항상 우리가 있었습니다.


성모님의 바쁜 걸음은 엘리사벳의 출산을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신이 입은 은총을 자랑하고, 당신의 신앙을 자랑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또한 알아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다음 장면들은 다름 아닌 주님의 어머니가 예언자의 어머니의 출산을 돕고 수발을 드는 일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서로의 정체를 알면서도 뒤바뀐 가치의 어머니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잘못이 아닌 진정한 하느님의 뜻이요 사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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