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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223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23 조회수35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1년 12월 23일 대림 제4주간 금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7-66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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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요한’


하느님의 일은 진행되고 일을 믿지 못한 아버지는 그 일을 그냥 쳐다볼 뿐입니다. 세상에 난 아들, 그 아들의 이름을 짓고 세상에 온전한 생명으로 인정받는 날에 아버지는 아무런 자격을 갖추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면서도 이 놀라운 기적의 증인이면서도 아무말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즈카르야는 자신의 평생 소원이던 아들의 이름을 두고 사람들이 술렁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임신과 출산,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더욱 이 아이에게 관심을 쏟습니다.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사람들은 이 아이에게 그 아버지의 이름을 붙여주려 합니다.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기적을 입은 사제, 그것도 지성소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훌륭한 사제의 이름을 따르는 것은 축복이 이어지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실강이가 시작됩니다.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기적을 부모의 공덕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하느님이 당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눈과 하느님의 일이 충돌합니다. 또한 이것은 하느님의 뜻을 모르는 이들이 당연히 생각하고 취하게 될 행동에 대한 본보기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통해서, 아니 자신들이 믿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알고 있는 당사자의 태도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에게 이 일을 묻습니다.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즈카르야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버립니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는 하느님의 뜻 앞에서 의심했던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그 훌륭한 이름을 남길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웃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버렸고 대신 하느님의 일 앞에 기뻐하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선 아버지로서의 가치를 포기하는 듯 이상한 일이 될 지언정 하느님이 해 주신 은총을 증언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몫이었습니다.

즈카르야의 선택에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시작합니다. 그의 아들은 그의 이름이 아닌 요한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아들이 자신과 같은 어리석은 의심을 품지 않기를 바랬을지도 모릅니다. 이 아들은 자신의 이름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이상한 기적의 이야기는 이 아이가 입을 열어 예언을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이들의 관심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이 사건을 통해 하느님의 오심에 귀를 열게 되었던 셈입니다. 정작 눈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을 의심했지만 적어도 사람에게 약한 탓에 그래도 이 예언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즈카르야가 자신의 이름을 거절한 사건이 요한이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말했던 일과 겹쳐져 보이는 날입니다. 하느님을 인정하는 것, 어쩌면 눈에 보이는 내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따르게 되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커다란 행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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