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나의 운명, 나의 기도/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23 조회수768 추천수15 반대(0) 신고



저녁 미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아기를 안은 한 엄마가 성당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기 얼굴의 반은 차지할 것 같은 큰 눈을 껌뻑거리는 그 콩만 한 녀석이 얼마나 예쁘던지 나는 그 녀석이 등장한 뒤로는 도무지 미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미사가 끝나고 제의를 벗고 있을 때 누군가가 제의실 문을 노크했다. 이윽고 엄마의 품에 안긴 그 아기가 할머니와 함께 제의실로 들어왔다. ‘제아’였다. 작년에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런 저런 건강상의 이유로 주변의 걱정을 끼쳐왔던 제아. 그 놈이 태어난 지가 벌써 한 돌이 가까워져서 할머니와 엄마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 모습을 내게 보여주시려고 데리고 왔단다.

빵빵하게 부풀어 있는 배를 만져보았더니 그 살결이 어찌나 부드럽던지 마치 실크자락을 만지는 듯 했다. 내게 안겨 있는 잠시 동안 어찌나 몸살을 해 대면서 칭얼거리던지 도저히 일분을 못 넘기고 자기 엄마 품으로 돌아간 놈이 그 즉시 싱글거리는 것을 보고는 얄미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건강한 아기와 함께 있는 그 순간이 내게는 너무도 행복했다. 그래, 엄마 품이 세상에서 제일 편하고 엄마 심장 뛰는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음악이겠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제아를 위해 함께 기도했던 나에게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제아를 데리고 방문해 준 할머니와 엄마의 마음이 고마웠고 엄마 품에 안겨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제아의 존재 자체가 감동이었다.

제아를 떠나보내고 잠시 성당에 다시 들러 감사의 기도를 바치고 있을 때 내 뇌리를 스치는 한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최초의 기억. 네 살 때 였을까, 돌아가신 내 아버지께서 내 뺨에 대고 뽀뽀를 하실 때 느껴졌던 그 까칠한 턱수염의 느낌! 그 느낌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다는 것도 신기할 일인데 게다가 그 느낌을 더듬을 때마다 가질 수 있는 심리적 안정과 평화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의 힘은 실로 대단하고도 놀라워서 이렇게 시공을 초월해서 한 사람을 성장시키고 감동시킨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태어나면서부터 단 한 번도 엄마의 품에서 들려오는 심장 박동 소리를 듣지 못하고, 단 한 번도 아빠의 까칠한 입맞춤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이 많다. 세상에 던져지는 순간부터 생존 자체가 일이 되어버리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한 번도 배불리 먹어보지도 못하고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하면서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남는 것에 만족해야만 하는 아이들과 우리들의 무관심 속에서 너무도 일찍 서둘러 세상을 떠나야만 하는 아이들.

다시 한 번 하느님 대전에 무릎을 꿇고 온 마음을 모아 간구하였다. 죽을 때까지 선교사제로 살아가는 동안 당신께서 선물로 보내주신 어린 생명들을 껴안으면서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려주는 엄마가 되고 입맞춤을 통해 까칠한 수염의 느낌을 전달해 주는 아빠가 되어 살아가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나는 참 약한 사람이다. 나는 참 큰 죄인이다. 나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일에는 너무나 게으르고 내 뜻을 이루는 일에는 너무도 부지런한 에고이스트egoist다. 이런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것도 선교사제로서 하느님으로부터 불리움을 받아 이 생을 살아가는 동안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엄마, 아빠가 되어주는 일 하나 만큼은 꼭 이루게 해달라고 막무가내로 매달리니 하느님께서도 답답하셨는지 곧장 응답을 주신다.

“그렇다면 너를 버려야지.”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빈자리에 아이의 운명을 채워 아이와 한 몸, 한 공동체를 이루는 일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고 또 사람의 죽을 운명 속으로 뛰어드심으로 우리와 하나가 되셨으니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우리들의 ‘아빠’이시다. 지금 내가 하느님께 빌고 있는 운명이 얼마나 큰일인지 알면 알수록 겁도 난다.

“하느님 아버지 앞에 떳떳하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1야고,27)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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