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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224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24 조회수300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12월 24일 대림 제4주간 토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7-79

그때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예언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습니다. 이 계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로,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우리가 두려움 없이,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도록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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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이제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성탄입니다. 해가 지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의 전통으로부터 시작된 성탄을 한 낮에 이렇듯 기다리는 것도 참 오랜만의 경험입니다만 이 시간을 즈카르야의 노래로 그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세례자 요한이 주님의 오실 길을 준비했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가 주님에 대해 심판주 혹은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으로 오실 것 이외에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본 일은 없습니다. 요한과 사람들이 기다린 구세주는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우리에게 그 구체적인 모습을 소개해줍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며 시작하는 즈카르야의 노래는 예수님을 힘센분 표현합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힘센 구원자, 원수들과 미워하는 이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실분이라 합니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은 모든 권능을 지니신 분이며 모든 세상의 악과 죄의 속박에서 우리를 풀어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습니다. 이 계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로,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우리가 두려움 없이,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도록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하신 약속이었고 그 약속은 언제나 함께 계신 하느님의 사랑 속에 다가온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사건이 일어나면 더 이상의 두려움 없이 속박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하느님의 세상을 살게 되리라고 희망에 차 노래합니다.

그리고 그 간절한 소망을 이룰 분을 세상에 소개하고 준비시킬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자신의 아들 "요한"이었습니다.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태어날 아이에게 바라는 아버지의 축복과 사명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즈카르야입니다. 힘센 구원자를 모셔들일 중책을 맡은 아기, 하느님이 주신 자신의 평생 소원과 민족의 구원을 이끌 인물을 맞아들이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아버지는 이 노래로 아들과 함께 예수님을 맞아들이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실 즈카르야와 세례자 요한이 준비한 주님은 그들의 기대와 바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힘센 구원자는 오셨으나 그분의 힘은 지배자들을 무너뜨리는 권능이 아니셨고 오히려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과 함께 사셨으니 말입니다. 그분이 풀어 내신 억압의 힘은 나라를 지배하는 권력이 아니라 스스로를 억압하는 죄의 사슬이었고 모든 것을 마비시키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변함없는 사랑으로 끊어 놓으셨습니다.

사람으로 받게 되는 모든 죄의 고리와 죽음이 끊어지는 지점이 사랑이라는 것을 주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가르쳐주셨고 보여주셨으며 그 모든 것을 그분의 삶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즈카르야의 이 기대는 어쩌면 잘못된 기다림이었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오실 주님에 대한 확신 이외에 바람으로 그분을 맞이했다면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오셔서 당신의 일을 하셨으므로 그 틀림이 잘못이라고 말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더 깊은 잘못의 근원을 끊어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이 세상에서의 자유라는 틀을 넘어 영원에 이르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으니 말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주님의 뜻은 우리의 뜻과 다릅니다. 더 넓고 더 깊기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부족한 기다림만으로도 벅찬 기쁨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기다리는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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