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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넘버쓰리가 두렵다/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25 조회수435 추천수9 반대(0) 신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로마를 찾은 방문객들은 한결같이 정통  이탈리안 피자와 스파게티를 맛보고 싶어 한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람들을 피자집이나 스파게티를 잘한다고 소문난 집으로 안내하면서 한 마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이 집이 로마에서 세 번째로 피자 맛이 좋기로 소문난 집입니다. 첫 번째라고 소문난 집은 워낙 사람이 많아서 줄을 한참 서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요, 두 번째로 맛있는 집은 밤에만 문을 열어요. 그 집들은 다음에 로마에 오시면 모시고 갈께요.”

물론 나는 로마에서 어느 집이 피자 혹은 스파게티로 첫 번째, 두 번째 맛있기로 소문난 집인지 모른다. 또 내가 모시고 가는 세 번째로 맛있는 집은 그때그때마다  식사 시간 때 지나치게 되는 집이라서 항상 바뀐다. 그런데도 내가 추천하는 ‘세 번째로 맛있는 집’은 대체로 호평을 받는다. 음식을 맛있게 먹었으면 맛있게 먹은 대로, 그렇지 않았으면 그렇지 않은 대로 그 ‘세 번째 집’이라는 표현이 던져 주는 묘한 여운과 새로운 느낌 때문인 것 같다.

어디를 가든지, 어느 분야에서든지 ‘최초’, ‘최고’, ‘최대’라는 단어들 속에 파묻혀 지내는 우리들에게 제일 맛있는 집은 이제 너무 식상하게 느껴지고 두 번째로 맛있는 집은 첫 번째를 뒤쫓는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지지만, 세 번째 쯤 되면 어쩐지 경쟁으로부터 자유롭게 자기만의 독특하고 깊은 맛의 세계를 추구할 수 있는 부드러움과 한가로움이 느껴진다.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는 돈과 재능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다. 세상은 일등만을 기억한다고 하지만 요즘처럼 다양하고 복잡하게 분화된 세상에서 나는 그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 수많은 잘 난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는 더 많은 ‘넘버 투’들의 서러움을 나는 다 헤아릴 수 없다.

나는 ‘넘버 쓰리’, 즉 ‘삼류’ 혹은 ‘꼴찌’로 분류되는 인생에 관심이 많다. 넘쳐 나는 ‘넘버 원’, ‘넘버 투’들 속에서도 꿋꿋하게 ‘넘버 쓰리’로서의 삶에 만족하면서 그에 충실한 ‘평범한 비범’에 매력을 느낀다. 그 중에서도 첫째가 될 수 있는 실력과 재능을 충분히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첫째의 자리를 마다하고 기꺼이 꼴찌의 자리에 앉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존경심과 함께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그것은 차라리 경외심에 가까운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몇 차례 그런 두려운 사람들을 체험해 보았다. 지난 세월 동안 나를 이겼던 수많은 사람들을 나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이 가진 ‘힘의 세기’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니 분명히 나를 ‘힘’으로 누르고 승리자가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나에게 고개를 숙여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가졌던 ‘지혜와 사랑의 깊이’는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존경스럽고 두렵다.

이길 수 있는 데도 타인을 위해 기꺼이 져주는 사람.
첫째가 될 수 있는 데도 타인을 위해 기꺼이 꼴찌가 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의 부드러운 겸손이야말로 진정으로 온전한 힘이라 할 수 있겠다. 세상에 어느 누가 스스로 지고자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을까? 아무도 이길 수 없는 이런 사람들이 나는 두렵다.

노자 22장 '곡즉전曲則全'을 덧붙인다.

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則敝新.
少則得, 多則惑.
是以聖人抱一爲天下式.
不自見故明, 不自是故彰, 不自伐故有功, 不自矜故長.
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誠全而歸之.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한다.”(마르9,35)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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