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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25 조회수659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





제1독서 이사야 52,7-10
제2독서 히브리 1,1-6
복음 요한 1,1-18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대림초 4개를 모두 태우고, 예수님의 기쁜 성탄을 우리 모두 맞이했습니다. 거리에는 신나는 캐롤송이 울려 퍼지고 있으며, 화려한 성탄트리와 각종 멋진 성탄 장식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성탄을 더욱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탄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이렇게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들이 아닌, 보이지 않는 주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아는 청년 하나가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신부님, 저는 신부님과 친하니까 나중에 하느님 나라 갈 때 손쉽게 갈 수 있겠지요?”

하느님의 결정에 따른 문제이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없다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저를 나중(?)을 위한 빽으로 생각하다니요. 그러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네가 지금 무척 배고픈데, 너 대신 내가 밥을 배불리 먹는다고 너의 배고픔이 사라질까? 마찬가지로 구원은 다른 누가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만이 나의 구원을 해결할 수 있는 거야.”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의 구원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내가 그 구원을 받아들여야지만, 즉 주님을 받아들여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초라한 마구간의 구유에서 태어나셨지요. 시작이 이렇게 미약했다면, 끝은 어떠하셨을까요? 화려한 궁전에서 최후를 맞이하셨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은 오히려 시작보다 더 큰 고통의 상징인 십자가였습니다.

이렇게 시작과 끝 모두가 고통이며 시련이었습니다. 우리가 따르겠다는 주님의 삶이 이러한데 우리가 추구하는 삶은 과연 어떤 것입니까? 편한 삶, 화려한 삶만을 쫓고 있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성탄절이 다가오면서 더 멋진 장식을 쫓고 있으며, 더 화려한 이벤트만을 즐겼던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러한 화려함과 편함이 당연히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착각까지 했던 것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이러한 화려함과 편함을 쫓지 않으셨는데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에만 관심을 가졌고, ‘사랑’의 원칙 아래에서 철저히 사랑하신 분이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구유, 십자가와 가까워져야 합니다. 살아생전에 예수님과 가장 비슷한 모습으로 사셨던 분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이라고 하지요. 성인께서는 평화의 기도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여,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을 구하기보다는 사랑하게 해주소서. 자기를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잊음으로서 참으며,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으로 부활하리니.”

이 기도의 모습으로 사셨기에 예수님과 가장 비슷하게 사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예수님과 비슷하게 살고 있었을까요? 성탄을 맞이하는 오늘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는 일생을 바침으로써 삶을 얻는다(타고르).




재활용의 인생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 베틀레헴.

 
이란 테헤란에는 아름다운 궁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궁전을 다 짓고 유리를 끼우려다가 유리가 깨지고 만 사건이 있었다고 해요. 다시 유리를 만들어 끼우려면 여러 달이 걸리기 때문에 건축 당사자들은 큰 고민에 빠졌지요.

그 때 어느 기술자가 이 깨진 유리 조각을 잘 이용하여 아름답게 창문에 끼웠는데 그 깨진 조각으로 햇빛이 비칠 때마다 찬란하게 무지개 색깔을 냈습니다. 그리고 그 창문 때문에 오히려 관광객들이 더 모여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유명 명소가 되었지요.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요? 때로는 내 인생이 깨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좌절에 빠지고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이 상황 안에서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는 확실하게 바뀔 것입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고, 조금만 더 주님 앞에 나아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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