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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225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25 조회수356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1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1,1-18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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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성탄입니다. 지난 밤 성탄의 성야를 축하하며 크리스마스, 곧 그리스도의 미사를 지낸 사람들은 다소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성탄 낮미사를 함께 하겠죠.

우리에게 오신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게 된 이 놀랍고도 기쁜 소식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시간들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담은 영화보다는 눈내리는 겨울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하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주제가 온 세상을 채우고 있으니 그 또한 기쁜 일인듯 싶습니다. 어차피 우리에게 365일 어느 날도 주님과 함께가 아닌 날이 아니니 그분의 생일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분이 우리에게 오신 뜻을 새기고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바로 세우는 기분 좋은 우리의 생일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모습 보다는 예수님이 오신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며 복음을 시작합니다. 어렵기만 한 단어들과 신비로운 내용들로 가득하지만 구절 하나 하나에 사람이 되신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와 이 일을 이루신 하느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기에 감동적인 내용이 가득합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한처음에 말씀이 하느님의 입으로부터 세상을 창조한 원리로 등장합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이라고 표현하며 삼위일체를 이야기하지만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등장했던 말씀이라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창조의 주역이라는 요한복음의 증언은 다시 그 말씀 안에 생명이었던 빛으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희망이 될 어둠 속의 빛이라 증언합니다.


세상을 만드신 말씀은 세상 창조만으로 당신의 역할을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창조에 깃든 삶의 이유와 내용으로 여전히 세상에 함께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만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세상에 살아가는 이유와 가치 모두를 끊임 없이 전해주는 유일한 길잡이가 되어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그 빛을 증언하러 온 세례자 요한은 그 빛이 의미하는 바를 잘 설명해줍니다. 빛의 존재를 그는 세상을 심판하실 분, 그 기준이 되는 분으로 여겼고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 앞에서 스스로 겸손함을 지니도록 준비했습니다.

그는 한사코 빛이 아니라 말했습니다. 그도 기다리는 빛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빛이 오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다리며 하느님께 어긋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자세였던 셈입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 빛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그분, 사람이 되셨고 우리와 함께 우리의 모습으로 우리 안에서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그분을 몰랐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와 전혀 다른 분을 기대했을테니까요. 모든 기준을 가지고 계신 분은 우리와 전혀 다른 분이며, 우리에겐 전혀 불가능한 삶을 사시는 분이라 생각했을테니까요. 지금도 그렇듯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와 같은 그분을 빛으로도 말씀으로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말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그런 주님을 만나 하느님을 알아본 사람들이 우리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란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이 이끄시는 빛을 알아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하느님을 닮은 자신들의 길을 걸을 수 있었고, 결국 우리가 거룩하신 하느님을 닮은 그분의 자녀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불가능하다 말했던 그 모든 거룩함의 가치를 사람이어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탄생한 어쩔 수 없는 욕심의 사람이 아닌 사랑의 사람들로 거듭납니다.

그리스도가 그 사람이고, 그를 믿는 이들이 그 다음 사람들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이 말씀이 모든 것의 핵심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살았음을 말하고 그것이 우리가 임마누엘이라 부르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복음인 이유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사람으로서의 삶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없는 신기한 일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은총과 진리를 보았다는 증언은 우리에게 충격과 같습니다. 그런 은총과 진리는 항상 다른 장소, 다른 권한을 지닌 사람의 몫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우리 중 그 누군가가 그 모든 것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요한의 증언은 예수님이 사람됨의 근본임을 말해줍니다. 모든 사람의 기준이 되는 분, 모든 인생의 기준이 되시는 분, 사람에게 세상을 다스리게 하신 그 말씀이시고, 언제나 어긋날 때마다 사람됨의 길을 알려주신 영원한 사람의 길잡이심을 증언한 셈입니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결국 성탄은 사람에게서 참 사람을 보게 하신 사건입니다. 우리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보고 은총에 은총을 얻었다는 말은 마음에 깊은 울림을 가지게 합니다. 주저 앉을 이유가 없으며 지금 당장에라도 참 사람의 길을 걷기만 하면 된다는 버팀목이 생기는 이야기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온 율법에 의해 사람들은 늘 주눅들어 하느님을 믿었고 그 율법에서 생겨난 것은 극소수의 의인과 수많은 죄인들의 역사였습니다. 죄인이 되지 않는 것이 유일한 삶의 원리였고, 그 죄에 한 번 빠져들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이 사람들의 삶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시라 믿었지만 결국 언제나 서 있는 자리는 죄의 위협에 시달리거나 죄에 빠져들어 있는 보통보다 더 못한 모습, 그리고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이 삶의 자유로움이 아닌 족쇄가 되어 버리는 상황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우리는 하느님의 율법이 죄의 기준이 아니라 사랑의 기준이며, 법에 우선하는 사랑의 근본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인생에서 찾아오는 은총이 사람임을 그리스도에게서 느꼈고 배웠으며 그리고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사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입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누구도 알지 못했던 하느님,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밖에 되지 못하기에 안된다 말했던 그 한계를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핑계와 우리의 좌절이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처음부터 그 한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완전히 사람이셨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 그분으로 인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우리도 거룩해질 수 있음을 알았으며 언제나 열려있는 사랑의 하느님을 향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 조차 우리와 전혀 다른 차원으로 만들어 버리는 우리의 못난 습관과 그를 통해 벌려온 은총과 진리와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으로 설명이 안되는 것은 어떤 이를 통해서도 극복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듭되는 성탄의 바꿀 수 없는 아기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에게 늘 변하지 않는 희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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