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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아의 감옥에서 해방되려면 [사랑의 신비]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26 조회수367 추천수1 반대(0) 신고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태오복음서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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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주면 줄수록 자신이 비워지고 버려지는 신비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바로 사랑의 신비로써 이는 가난의 영성하고도 연결되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행동을 꾸준하게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경험되어지는 '산 신앙'이 됩니다. 

'무소유'라는 매력적인 정신작용이 인간의 머리 속에서 활동하지만 결국 자신을 비우거나 자신을 비우는데 있어서는 거의 대다수 실패하고 맙니다. 아무리 많은 책을 탐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책의 저자인 타인의 것이며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령 간접경험의 머리로서는 이해가 되겠지만 직접경험에 의한 살아있는 지성으로써는 될 수 없습니다. 간접경험하는 이들은 직접경험하는 이들에게서 주어지는 사랑의 신비에 대하여 어두운 마음의 눈과 어두운 마음의 귀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자신을 주면 줄수록 사랑이 부족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부족한 사랑을 채우기 위해서는 자신을 더 비워야 하고 자신을 더 버려야 한다는 낮은 마음에로 이르게 됩니다. 환경의 한계성으로 인하여 자신을 버리거나 비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은 자기 버림이나 자기 비움의 수덕을 실행해 가는데 조금도 어려울 것이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자기비움, 자기포기, 자기버림의 수덕을 굳이 닦지 않더라도 인간의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울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 아버지의 사랑이신 "내어주는" 사랑은 참으로 비우게하고 버리게하며 포기하게 합니다. 내어 주는데 비워지고 내어 주는데 버려지며 내어 주는데 포기되는 것입니다. 내어 주는데서 도리어 채워지는 것은 오로지 사랑 그 자체일 뿐입니다.
 
그런 연유로 "내어 주는" 사랑을 행동하는 사람에게서는 늘 가난이 따릅니다. 가난한 마음이 가슴 속에 한 마굿간의 구유처럼 마련되어집니다. 가난한 마음의 구유에는 육화하신 말씀께서 기꺼이 내려오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시며 빈자의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영혼은 이렇게하여 하느님을 뵙습니다.

머리로 '사랑'을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은 도무지 체험할 수 없는 '사랑의 신비'입니다. 그런 머리로 참된 사랑의 중개자(사랑의 수취인)을 모해하고 비아냥거리는게 세상의 지혜가 되었습니다. 사랑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사랑자'는 미움을 받게 되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이 말씀을 맞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사랑인데 세상의 지혜로써는 이 사랑에 대하여 '아버지의 사람들' 외에는 알지 못합니다. 어두운 마음으로 사랑 밖에서 살고있는 사람은 '사랑'을 볼 수 없어 '사랑'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둠은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에 자신을 돌이켜 살펴보지 않고 질투와 미움으로 가득찬 어둠의 지배에 묶인 영혼들이 사랑을 보기싫어 합니다. 

그런데도 자기버림, 자기비움, 자기포기를 이루고자 합니다. 어리석은 죽은 지식에 속박되어 있고서는 그 어두운 '자아의 감옥'에서 풀려날 수 없습니다. "내어 주는" 사랑의 큰 실천없이는 영혼은 언제나 어둠에 머물러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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