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226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26 조회수35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1년 12월 26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성탄 후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곁을 떠나신 후 예수님을 따르다 순교한 첫 사람을 만납니다. 그가 스테파노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희망이고 또한 우리에게 은총이라 불리는 특별한 축복의 삶입니다.

그런 우리의 생각에 스테파노의 죽음은 많은 고민을 안겨줍니다. 과연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이 사람의 죽음을 볼 때 우리에게 큰 기쁨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보면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수많은 은총과 성공의 희망들은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 그것도 하느님을 이미 아는 사람들에게 잡혀 의회에서 회당에서 박해를 당하는 것. 이치도 모르는 이들 앞에 끌려가 다른 민족들 앞에 하느님을 증언해야 하는 일은 하느님을 믿어서 승승장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상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리고 허용되지도 않는 말들입니다.

누가 전지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이유로 이런 일을 당하리라 생각하겠습니까? 그러나 말씀은 변하지 않고 바뀌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첫번째 당사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셨습니다.


당신이 사랑하시던 사람들에게 당신이 알려주신 율법으로 묶이고 채찍질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이 성탄에도 뚜렷하게 기억합니다. 또한 당신 백성의 손에 이끌려 다른 민족의 총독 앞에서 당신을 증언해야 했던 예수님의 처지 또한 기억합니다.

하느님이 당신의 뜻대로 살았음에도 받아들이지 않는 이 장면들을 예수님은 당신을 따를 이들이 걸어야 할 길로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 길을 걸어 그 본보기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고통 넘어에 어떤 모습으로 어떤 자세로 서 있어야 하는지까지 연결됩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같은 것을 배웠고, 같은 율법아래 살아가는 사람들. 아는 것이 같고 처지도 같다는 이유 때문에 사실은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고만 이야기하십니다. 그리고 그 때에 어떻게, 무엇을 말할지 일러주신다 합니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모두가 아는 하느님을 증언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지만 그 때 사람들에게 증언이 될 것이 아버지의 영이시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면서 헤아려 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 앞에 섰을 때 그분은 별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것으로 그분의 잘못을 찾아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해명이나 설명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로 사람들의 잔인한 마음들을 모두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삶 자체가 어떻게도 흔들리지 않는 하느님의 사람 자체였던 셈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그들에게 절대적이었던 하느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죽이게 됩니다. 스스로 자신들이 믿고 있는 분이, 그리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행하게 되어 버린 셈입니다.


사는 것 자체로 아는 하느님과 믿는 하느님의 존재가 엇갈리는 상황. 그리고 하느님의 진실이 묻히게 되는 상황들. 그러나 결국 그 시도가 부활로 인해 오히려 모든 이에게 참 진리로 선포되는 사건이 예수님의 본보기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대로 살았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진리를 품고 있다면 우리는 달리 증언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 자체로 모든 이에게 드러나게 마련이니 말입니다. 대신 우리는 어쩌면 늘 당하고 눌리는 입장에 서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미움을 받고 그럼에도 견디는 입장에 선 사람들은 결코 승리자의 모습이거나 권력자의 모습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모두가 참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에 나가기 전 이미 우리 곁에 있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이러한 과정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미움과 핍박에서 견딜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받아들이신 십자가가 복음의 증거입니다.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