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장미 아닌 장미인 식물, 예리코의 장미 지난 5월호에서 장미의 이름을 함께 쓰는 식물들 중 하나로 예리코의 장미(Rose of Jericho)를 짧게 소개한 바 있다. 이 장미는 구약성경에서 향백나무, 삼나무, 야자나무, 올리브나무, 플라타너스와 더불어 이름이 거론될 정도로(집회 24,13-14 참조) 널리 알려져 있다. 그만큼 그 생태가 독특하고, 그래서 나름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식물이다. 이 장미는 중동 지방과 북부 아프리카의 사막지대 같이 아주 건조한 지역에서 산다. 그런데 주변에 물기가 없으면 잎을 떨구고 바싹 마른 줄기를 단단하게 오므려 둥근 공 모양을 만든다. 그러고는 바람에 불려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겉보기에는 말라서 죽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휴면 상태로 10년 넘게도 버티다가 수분을 공급받으면 이내 줄기를 펼치고 잎과 꽃을 피워내며, 마침내는 열매를 맺어 씨앗을 퍼뜨린다. 사람들은 이 장미의 독특한 생태를 보며 출산 또는 탄생을 연상했다. 그래서 이 장미를 ‘성모님의 장미’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또한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것을 연상했기에 부활초(復活草) 또는 부활꽃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렀다. 이 장미의 학명 아나스타티카 히에로쿤티카(Anastatica Hierochuntica)에서 아나스타티카는 ‘부활’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나스타시스(ἀνάστασις)와 관련된다. 이 장미는 이밖에 ‘성모님의 꽃’, ‘성모님의 손’, ‘안산수(安産樹)’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세상에는 저마다 나름의 아름다움과 다채로운 생김새로 칭송되는 꽃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꽃들은 고유한 특성이 있어서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며 전설들을 전해 준다. 이를테면 예리코의 장미는 오래 전부터 몇 가지 이야기들을 세상에 들려주는 장미의 일종이다. 말라 죽은 것 같이 보여도 수분을 공급받으면 꽃을 피워 이스라엘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온다. 모세가 느보 산에서 숨을 거두려 할 무렵, 바람에 여러 종류 식물들의 향기가 실려 왔다. 이스라엘이 약속받은 땅, 그러나 모세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땅에서 자라는 식물들의 냄새였다. 그 신선하고 향기로운 냄새들을 맡으면서 모세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가 날아와서 그의 발 아래로 떨어졌다. 말라서 둥글게 말린 예리코의 장미였다. 모세는 자기가 마른 채로 바람결에 굴러다니는 이 풀처럼 되리라는 징조라고 생각했다. 그때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을 조금 가져다가 이 풀에 뿌려라.” 모세는 그대로 하였다. 하느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나의 종 모세야, 두려워하지 마라. 네 영은 이 풀과 같이 되고, 너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토록 기려질 것이다.” 이 장미가 되살아나며 그 줄기와 잎이 펼쳐지는 것을 본 모세는, 자기는 곧 죽겠지만 그의 영혼은 영원히 살아남으리라는 것을 알고 위안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교회에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전해 온다. 예수님이 인류를 위해 수난하시고 돌아가시게 된 즈음에 예리코의 장미가 시들어 말랐다. 그리고 예수님이 돌아가시어 무덤에 묻히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을 때 예리코의 장미도 되살아났다. 사람들은 이 장미의 꽃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하는 이 세상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믿어마지 않았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하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 첫날 바람결에 동그랗게 말린 예리코의 장미 뭉치 하나가 예수님 계시는 곳으로 굴러 왔다. 그리고 40일 내내 예수님 곁에 머물러 있었다. 예수님은 이른 아침이면 작은 물방울들을 손가락으로 찍어서 입술을 축이심으로써 갈증을 견뎌내셨다. 이 장미가 날마다 동틀 무렵이면 대기 중의 수분을 모아 자기 뭉치에 이슬로 맺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광야에서 단식과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은 이 장미가 어려움을 이겨내며 생명을 유지했다가 끝내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점을 눈여겨보시고 축복을 내리셨다. 예수님께 주어진 네 번째 ‘예물’ 성가족이 베들레헴에서 이집트로 피신하던 때의 일이다. 황망하고 화급한 일이었지만,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이 위험한 여행에서 자신의 가족을 보살펴 주실 것이라 굳게 믿었다. 자신의 아기가 중대한 약속 세 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동방 박사들은 아기에게 세 가지 예물을 가져왔다. 그것은 다윗과 같은 왕이 되리라는 약속(황금), 멜키체덱과 같은 사제가 되리라는 약속(유향),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되리라는 약속(몰약)이었다. 마리아는 서둘러 아기를 안고 나귀에 올라탔다. 그들이 사막 어귀에 이르렀을 때 날이 저물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그저 모래밭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모래밭을 건너야만 했다. 문득 동굴 하나가 눈에 띄었다. 꼭 베들레헴의 마구간처럼 생긴 그 동굴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동굴의 사람들이 성가족을 받아들였다. “어떻게 아기를 데리고 이 사막을 건널 생각을 했나요?” 요셉이 대답했다. “천사가 이집트로 피신하라고 알려 주었어요.” 그러면서 하느님께서 이 아이를 위해 마련해 두신 계획이 있기 때문에 자기들은 무사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세 가지 예물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동굴의 남자가 아기를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이 아기에게 예물을 주고 싶군요.” 그러고는 등 뒤에 있던 마른 풀 한 뭉치를 집어서 내밀었다. “이것은 예리코의 장미라고 해요. 나는 예리코에서 자랐는데, 그곳에서 이야기 하나를 들었어요. 만약 사막에서 한 사내아이를 만나 이 장미를 주면, 그 아이는 이 장미와 같은 자질을 갖게 될 것이라더군요. 이 장미는 결코 죽지 않으며, 물기가 아주 조금만 있어도 되살아난답니다.” 마리아는 이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죽지 않는다’는 것은 세 가지 예물이 약속하지 않은 것임을, 자신의 아들은 결코 죽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고 영원을 시간 속으로 가져올 것임을 말이다. 마리아는 그 예물을 받아들이며 동굴 안을 둘러보았다. 한구석에 병을 앓는 소녀가 누워 있었다. 마리아는 문득 장미 뭉치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이어서 소녀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소녀가 말했다. “아빠,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아빠가 저 낯선 분들에게 장미를 준 순간에 내 몸이 따뜻해졌어요.” 마리아는 이제 네 가지 예물로써 자기 아들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리아는 이 장미를 축복하며 말했다. “예리코의 장미야, 너는 나의 아들이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게 될 것이고, 이 아이가 태어난 날 사람들은 네가 되살아나는 것을 보며 네 생명의 기적을 기뻐하게 될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10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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