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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231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31 조회수310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1년 12월 31일 성탄 팔일 축제 내 제7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1,1-18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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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성탄을 두고 몇 번이고 반복되는 이야기. 가장 중요한 이야기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에겐 그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께는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에겐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하느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말에는 변하지 않는 것과 잊어버린 것이 공존합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과 당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려했다는 것은 어김없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셨고, 우리 안에 사셨다는 것은 매번 잊어버리는 사실입니다.


"복음"이라고 부르는 책을 우리는 예수님의 일생을 담은 책이라고 구분짓습니다. 그러나 이 책들의 이름이 "복음"인 이유는 예수님의 생애가 바로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책을 집어 들고도 생각도 없이 공부를 하려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하느님께 목마르다 합니다.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계셨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일생 이전에 그분에 대해 속시원히 말하고 시작하는지도 모릅니다. 복음의 시작을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하니 말입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결국 알 수 없는 말들로 시작된 복음은 점점 더 사람들에게 가까워집니다. 말씀이 말씀 속의 생명으로,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으로 변합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빛이 세상에 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 빛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지금처럼 말입니다. 있지만 있는 줄 모르는 세상은 하느님의 변함 없는 수고로움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느님의 이름은 줄기차게 불러댑니다. 함께 해 달라고 요청도 하고 말입니다.

복음은 결국 그 빛이 사람이 되었음을 알립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말씀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하느님의 사랑의 이야기의 출발입니다. 복음을 읽고 신앙을 이야기하기 전 우리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에 대해 알고는 있는지 다시 물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 정말 우리의 소원이라면 그 일은 이미 이루어졌음을 알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허공에 대고 하느님을 부르며 하느님의 응답을 찾는 이들에게 요한 복음의 시작은 빛이 있어도 빛을 보지 못하고 하느님이 계셔도 하느님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이들에게 전하는 크나큰 울림일 수 있습니다.


삶에 하느님의 공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답답함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을 불러 일을 해결해가며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보이지도 않는 하느님, 은총을 받기에 너무 먼 하느님을 기도로, 정성으로 감동시켜 은총을 받아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계셨으면 좋겠다면 이미 계셨던 하느님을 보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하느님에게 던지는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 어쩌면 이미 답이 나와있는 그러나 내가 하기 싫어하는 것이어서 눈을 감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될지 모릅니다.



참 감동적인 이야기. 그러나 가장 답답한 이야기가 성탄에 들리는 요한복음의 울림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음이 기쁘지 않은 사람. 아니면 그냥 박수를 치고는 돌아서서 다시 하느님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다시 눈을 뜨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불행히도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신 것 이상 기쁜 소식은 없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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