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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20101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01 조회수34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2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6-21

그때에 목자들은 베들레헴에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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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오늘은 천주의 모친 대축일이자 세계 평화의 날입니다. 또한 2012년이 열리는 새해 첫 날입니다.

여러가지로 의미가 겹쳐있는 날, 모두가 공통으로 생각하는 단어는 "희망"입니다. 사실 어제와 오늘이 다를 것이 별로 없지만 작년과 올해라는 표현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 한 해의 첫날을 평화를 이야기하며 시작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다툼이 없는 상태가 평화라고 다들 느끼지만 이 평화는 어떤 위치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가지 모습으로 평화를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에게 평화의 모습으로 제시된 것은 예수님 성탄의 풍경입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한 아이, 그 아이의 탄생은 철저히 세상의 고요 속에 이루어집니다. 떠들썩하고 누구나 관심을 가지는 아이가 아니었기에 그리고 사람이 몸을 뉘일 수조차 없는 곳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은 예수님이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름을 가질 지위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하느님의 사람의 탄생이 아니었기에 예수님의 성탄을 감싸고 있는 모든 풍경과 소재들은 평범하기 그지 없고 어떤 의미에서는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세상의 평화라는 거창한 주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의 예수님의 탄생, 그리고 그 탄생이 끼친 영향은 어떠합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세상의 평화의 진짜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때에 목자들은 베들레헴에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천사가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주고 경배하러 도착한 이들은 들에서 양들을 키우는 목자들이었습니다. 들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의 근본에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삶에 사회적 지위를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에겐 넓은 들의 풍경으로 느껴지는 목자의 삶의 터전은 사실 우리가 "땅", "흙"이라고 부르는 세상의 근본입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일하는 이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목격한 첫 사람들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거친 삶에서 예수님의 가치가 고백됩니다.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목자의 고백, 구세주의 탄생과 그분의 거룩한 일과 미래에 대한 예언이었을 것입니다. 듣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못하게 하고, 그 어머니의 마음 속에 새겨진 이야기들은 분명 하느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천사의 알림을 이미 경험한 부모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목자에게도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러나 목자의 가치는 하느님을 아는 이들에게만 매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살고 있는 터전과 그들의 삶은 그들 고백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맙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사회의 떠들썩한 가치에 묻히고 숨겨지다시피 할지도 모릅니다. 가장 작은 이들이 품은 희망과 평화와 사랑의 메세지는 그들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정도로 평가 절하되고 사람들 모두의 가슴 안으로 들어오기엔 너무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찬미를 이끌어낸 한 아기의 인생도 또한 그럴지도 모릅니다.


누구도 모르는 그저 그런 예수님의 30년 인생이 그렇듯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예수님 탄생의 의미는 그 뜻이 세상 가장 낮은 이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에서 실제는 가장 큰 힘을 가집니다. 목자는 사람됨의 가장 아래에 있는 가치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무엇이 전해졌다면 세상 모든 이에게 전해진 것과 같은 이치를 지닙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하늘에서 하느님을 찾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가려져 있고 신비의 영역이지만 실제는 가장 작고 여린 이들에게조차 전해진 모두가 알 수밖에 없는 가치로 선포된 것입니다. 단지 알려고 하지 않는 가치 속에 주님이 계셨고, 무시해도 좋을 위치에 주님이 사셨다는 것이 사람들이 모르는 이유일 뿐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의 생각보다 깊은 이유입니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지 못한 정도까지 그분의 사랑이 미쳐있기에 우리는 발견하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하는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화의 고귀한 가치를 논하는 것은 말 구유에 뉘이신 예수님께는 어울리지 않는 가치입니다. 그분이 구유에서조차 평온한 모습이라는 것은 평화라는 것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거나 차지하여 분란을 막아 놓는 일이 아니라 세상 어디에서나, 어떤 위치에서나, 어떤 삶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가치라는 것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유를 꾸밀 때 빠뜨리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부모와 그 집의 주인인 짐승들입니다. 더하거나 덧붙이지 않아도 사랑이면 어느 곳이나 평온할 수 있고 그것으로 하느님을 모셔들이는데 충분하다는 것을 알아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아이에게 붙여진 예수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리라는 예언이 담긴 이름입니다. 누구도 예수님의 이름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탄생과 그분의 가치가 세상의 가치에는 볼 품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평범한 한 아이에게서 세상의 진정한 구원이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하느님의 일은 그렇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세상 누구라도 구원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가치로 하느님을 논하는 습관은 잘못하면 하느님도 몰라보는 우리를 만들고 말지도 모릅니다. 어느새 시작된 새해 우리가 이 가치를 놓치지 않고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http://blog.daum.net/viababoo 개밥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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