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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의 사유화
작성자박승일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02 조회수394 추천수2 반대(0) 신고
성경의 사유화(私有化)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한 성찰-4]
 
2011년 12월 26일 (월) 13:53:08 박동호 .
 

   
▲ 박동호 신부.
필자는 무엇보다도 성경의 사유화를 교회의 대형화, 중산층화, 세속주의화의 현상의 원인으로 제시하고 싶다. 물론 성경이 ‘나’에게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성경은 그냥 독립된 ‘나’보다는 공동체와 인연을 맺은 ‘나’에게, 더 나아가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은 ‘공동체’에게 드러내주신 하느님의 계시,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바람, 하느님의 열정, 하느님의 말씀이다.

나의 하느님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아버지이시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이라는 보잘 것 없었던 유목민족과 그 역사의 처음부터 하느님께서 동행하셨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신약성경은 그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 예수가 무엇을 사람들에게 가르쳤고, 무엇을 드러내보였으며, 어떻게 이루었는지를 제자와 군중(보통 사람들, 약하고 억눌린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여준, 신앙의 언어로 고백한 공동체의 신앙고백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성경을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가두어놓는다. 사회적 맥락, 공동체가 직면한 사회문제, 공동체 역사의 여정에서 동행하는 하느님이 아니라, 나에게, 그것도 나의 마음에 다가오시는 은밀하고 사적이며 영적인 하느님으로만 받아들이려 한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기보다는 나의 마음과 기분에 하느님을 맞추는 격이다. 그 같은 현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교회 안에서 성경과 관련된 여러 모임이 있다. 성경공부모임, 성경필사, 모임에서의 ‘말씀나누기’에 이르기까지 성경 말씀은 교회 안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교우들 사이에 회자된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개인의 구원보다는 공동체와 세상의 구원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경륜를 계시하지만, 우리 교우들은 세상 구원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창세기의 창조이야기와 인간의 타락과 하느님과의 관계의 단절도 개인사가 아니라 인류와 세상과 하느님의 관계(조화)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 사건역시 세상의 억압과 착취구조와 하느님과의 대결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예언서들과 시편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어떻게 세상의 제국과 다른 모습으로 사회를 형성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이런 내용들은 대다수의 성경학자들의 연구 결과로서 동의한다. 그리고 바로 이 성경의 계시로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성찰하도록 안내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성경의 이런 사회적, 역사적, 공동체적 맥락은 아주 간단하게 잊혀지고, 대신 성경은 읽는 개인의 마음에 떠오르는 감성의 대상이 될 뿐이다. 창세기를 읽으며 인간의 욕망을 깊이 있게 성찰하며, 오늘날 현실을 반성적으로 재구성하려하지 않는다. 탈출기를 읽으며 무력과 금력으로 무장한 억압세력의 착취구조를 깊이 있게 성찰하며, 이스라엘 같은 사회적 약자 계급의 신음소리를 들으려하지 않는다. 예언서를 읽으며, 공동체 내 중앙집중화된 권력이 어떻게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고,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 성찰하며, 오늘 우리 사회를 바라보지 않는다.

신약성경의 예수님 주변에 왜 사람들이 그토록 몰려들었고, 그분의 가르침에 감탄했는지, 왜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못 죽여서 안달복달했는지 그 사회, 정치, 역사적 배경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예수님의 은총만이 내게 흘러넘치기를 바란다. 바오로 사도가 성찬례의 거행에 가난한 이를 위한 배려를 핵심의 내용으로 삼은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대신에, 성찬례에 거룩하게 참여하는 자신만을 그린다. 이스라엘, 그리고 그리스도 공동체가 처한 역사적 배경에서 이해하고 성찰해야 할 묵시문학은 미래의 불길한 파국을 점치는 판타지쯤으로 읽는다.

성경을 읽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주관적으로 읽는데 그치기 때문에, 신앙과 성경, 신앙과 생활, 생활과 성경은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성경은 개인의 독서 취향에 맞게 사유화된다. 그 대신 신앙은 몇 몇 교회 규정을 지키는 것쯤으로 환원되고, 세상의 가치 혹은 세상의 이데올로기에 맞추어 생활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사목자들은 성경의 진리를 구체적인 생활환경에 적응시켜 설명하기보다는 일반적으로 혹은 추상적으로만 설명하려 한다. 구체적인 생활환경은 당연히 현대 사회의 교우들에게는 경제, 정치, 국제질서, 제도와 법, 교육 따위의 구체적인 영역으로 드러난다. 교우들의 경제생활은 구체적이며 실재이며 현실이다. 다른 영역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현실을 다루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성경을 그냥 추상적으로 혹은 일반적으로만 설명하려한다. 그리고 그 대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성경을 개인이 알아서 나름대로 대하도록 함으로써 발생하는 성경의 이 사유화는 필연적으로 신앙의 개인주의화를 불러온다.

박동호 신부(서울 신정동본당,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지난 12월 9일 수원 권선동 수원대리구청에서 ‘교회,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라는 주제로 ‘사회교리주간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발제를 맡은 박동호 신부(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는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한 성찰'이라는 주제로 교회의 대형화, 중산층화, 세속주의화 등을 다루면서 교회의 정체성을 세상 안에서 찾아가는 길을 모색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는 여기서 제기된 문제의식을 독자들과 공유하려고 한다. 싣는 차례는 다음과 같다. -편집자

1. 200 주년 사목의안 - 교회의 대형화
2. 200 주년 사목의안 - 교회의 중산층화
3. 200 주년 사목의안 - 교회의 세속주의화

4. 성경의 사유화(私有化)

5. 신앙생활의 개인주의화
6. 세상 안의 교회, 세상을 초월한 교회 - ‘지금 여기’ 대조사회로서의 교회
7. 여가활동으로서의 신앙
8. 외면하는 사회교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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