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생활] 기도합시다(Oremus)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기도를 흔히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말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대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 없이 올바로 기도할 수 없고, 침묵 안에 머물 줄 모른다면 그분과 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사랑 안에서 자라면서 차츰 대화하는 법을 배우듯이, 우리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앙을 성숙시키면서 기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교회 생활의 원천이자 정점인 전례 안에서 공동체가 바치는 기도와 행위는 교회가 믿고 있는 모든 것의 종합적인 표현이라 하겠다. 그래서 전례 안에서 한마음으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하느님의 뜻에 맞도록 필요한 은혜를 간청할 때 우리는 탁월한 방식으로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전례는 또한 기도의 학교인 것이다. 그리스도교 전례의 중심인 미사에서 사제가 바치는 첫 기도인 본기도는 기도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담고 있다. 매우 간결하여 미사 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지나치기 쉽지만 이 기도의 의미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드러나야 할 신앙의 진리와 기도하는 법을 알려준다. 본기도의 명칭과 의미 미사 거행 전체의 절정을 이루는 감사 기도를 비롯하여 본기도, 예물 기도, 영성체 후 기도를 가리켜 ‘주례자의 기도’라고 한다. “이 기도들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회중을 이끄는 사제가 거룩한 백성 전체와 모든 참석자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0항). 5-6세기 무렵에 로마 전례에 도입된 본기도는 본디 ‘기도’를 뜻하는 라틴 말 ‘oratio’(오라시오)라고 불리다가 차츰 ‘collecta’(콜렉타)라는 말로 정착되었다. ‘콜렉타’라는 명칭은 ‘한데 모으다.’ 또는 ‘집결시키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colligere’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 용어는 본디 백성이 미사가 거행될 본당으로 행렬하여 이동하기 전에 모여있던 장소에서 주례자가 바친 첫 기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래서 ‘집회에서 바치는 기도’, 곧 모인 회중 앞에서 바치는 기도나 신자들의 뜻을 모아 주례자가 바치는 기도라는 의미에서 ‘모음 기도’라 부르기도 한다. 본기도를 가리키는 이 두 용어의 의미를 12세기의 한 교회 저술가의 미사 해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제는 모세나 십자가에 달리신 구세주의 모습을 따라서 손을 들어 올리고 기도를 합니다. 그는 ‘기도합시다.’라고 말하면서 직접 기도하며 다른 사람들을 기도에로 초대합니다. 많은 이의 이름으로 말하는 공동체의 대리자로서 사제는 회중 전체를 자기 곁으로 한데 모읍니다. … 이 기도는 ‘기도하다.’의 뜻을 가진 동사 ‘orare’에서 나온 말로 ‘오라시오’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의 선, 현재와 미래의 선익을 얻기 위하여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제는 선한 것들이 우리에게 오고 악한 것들은 멀어지도록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또한 ‘콜렉타’라고도 부릅니다. 그것은 백성이 이 기도 아래 한데 모이고 백성의 간청들이 하나로 모아져서 사제를 통하여 주님 대전에로 나아가도록 하기 때문입니다”(Sicardo di Cremona, Mitrale 3,2). 본기도는 집전자가 자신에게 맡겨진 신자들을 위해 간구하며 주님께 모아들이고 올려 드리는 기도들의 묶음과도 같다. 우리는 미사의 시작 예식에서 주님의 현존을 선포하고(인사)주님의 자비를 간청하며(참회와 자비송)주님의 영광을 노래한다(대영광송). 본기도는 시작 예식을 마무리하며 앞서 행한 모든 것을 종합하여 하느님께 바쳐 올리는 공동체의 기도이다. 본기도의 구조와 영성적 가치 본기도는 권고, 침묵, 기도, 백성의 환호인 “아멘.”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제는 먼저 손을 모으고 신자들을 향해 “기도합시다.”(Oremus)라고 권고한다. 이 기도의 공동체적 성격은 언제나 ‘우리’를 주어로 삼는 권고의 말과 기도문의 형식에서도 잘 나타난다. 하느님의 현존 앞에 한데 모인 당신의 교회, 당신의 백성, 당신의 종, 당신의 신자들은 다름 아닌 ‘우리’이다. 사제는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서 같은 자세를 취하며 그 백성의 일원임을 드러낸다. 동시에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회중을 이끄는 존재로서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모으도록 신자들을 초대한다. 사제직의 고귀한 가치는 사제가 거룩한 백성 전체의 이름으로 기도를 바치고 성사를 집전하고자 하느님 대전 앞에 서 있을 때 가장 빛난다. 이어지는 잠깐의 침묵은 미사 거행의 본질적 요소로서 결코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이때의 침묵은 신자들에게 능동적이고 내적인 참여의 공간을 열어 준다. 이 침묵 가운데 신자들은 “자신이 하느님 앞에 있음을 깨닫고 간청하는 내용을 마음속으로 생각한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54항). 그 다음에 사제는 팔을 벌리고 그날 미사의 성격을 표현하는 본기도를 바친다. 이 기도는 분명한 방향성을 갖고 있다. 곧 하느님 아버지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바치는 기도이다. 하느님께서 들으시고 받아들이시도록 교회의 모든 기도는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하느님 아버지께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두 팔을 벌린 채 서 있는 사제의 동작과 자세도 ‘천사의 손에서 하느님 앞으로 올라가는 향 연기’(묵시 8,4 참조)처럼 하늘을 향해 오르는 기도의 말을 동반한다. 무엇보다 이 자세는 십자가에서 팔을 펼치시어 죽음으로 죽음을 물리치시고 부활을 선포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사제는 이 동작으로 십자가의 희생 제사인 미사에서 공동체의 이름으로 바치는 주례자의 첫 기도에 모든 신자를 참여시킨다. 로마 전례 전통에 따른 본기도는 그 내용이 군더더기 없이 아주 간결하고 분명하다. 그 내용은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지만 기도의 핵심 요소들을 잘 종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주님 세례 축일의 본기도는 다음과 같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그리스도께 성령을 보내시어 하느님의 사랑하시는 아들로 선포하셨으니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난 저희도 언제나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 먼저 본기도는 언제나 하느님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경우에 따라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과 같이 하느님의 칭호와 결합된 다양한 수식어가 덧붙여진다. 그다음에 주님 세례 축일 미사의 성격을 드러내는 하느님께서 행하신 구원 사건에 대한 ‘기념’ 부분(요르단 강에서 … 선포하셨으니)이 나타난다. 그리고 기도의 동기라 할 수 있는 하느님께 드리는 청원의 내용(물과 성령으로 … 살아가게 하소서)이 뒤따른다. 끝으로 사제는 삼위일체 성격의 맺음말로 기도를 마친다. 신자들은 “아멘.”으로 환호하여 사제가 바친 청원에 함께 참여하고 이 기도를 자신의 기도로 삼는다. 본기도는 이러한 구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공동체는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고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분의 놀라우신 업적을 기억하며 지금 우리 자신과 교회와 세상을 위해 필요한 것을 간청한다. 예로 든 본기도에서도 나타나듯이 대림과 성탄, 사순, 부활과 같은 중요한 전례 시기나 축일에는 그날 미사의 성격을 더욱 잘 드러내는 특별한 구원 사건이나 주제가 언급된다. 사순 시기 제3주일의 본기도는 회개와 은총의 시기인 사순 시기의 정신과 주제를 다음과 같이 잘 나타낸다. “하느님, 온갖 은총과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단식과 기도와 자선으로 죄를 씻게 하셨으니 진심으로 뉘우치는 저희를 굽어보시고 죄에 짓눌려 있는 저희를 언제나 자비로이 일으켜 주소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기도할 때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마태 6,7)고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본기도는 간결한 표현 안에 신앙의 진리를 담아낸 아름다운 교회의 기도이다. 매일 미사에서 바쳐지는 본기도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의 기도가 좀 더 단순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 날마다 삶 속에서 하느님을 자주 부르고 잠시라도 침묵 안에 머물며 그분께서 내게 베푸신 사랑을 기억하자.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지금 내게 필요한 은혜를 청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 김기태 사도 요한 - 인천교구 신부.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8년 10월호, 김기태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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