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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 8일 주님공현대축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08 조회수753 추천수15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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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8일 주님공현대축일-마태오 2장 1-12절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예수님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는 주님공현대축일입니다. 교회는 오늘 또 한 번의 성탄 축제를 거행합니다. 참으로 경탄할만한 신비인 구세주 하느님의 육화 강생의 신비,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신비를 묵상하고 그분 탄생의 의의를 되새겨야 하는 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몸을 지니고 인간 세상에 내려오신 정말이지 기상천외한 대사건, 인류역사상 가장 대단한 사건인 육화강생의 이유는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신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당신 나라로 올라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 신성을 부여하기 위해, 유한한 인간성에 무한하신 하느님성, 영원성을 투입하기 위해, 보잘 것 없는 존재, 무(無)인 존재인 인간을 하느님화하기 위해, 그래서 결국 인간의 품위를 들어 높이기 위해, 인간에게 참된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이토록 말로 표현 못할 은혜로운 대사건,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철철 흘러넘치는 성탄의 신비 앞에 당연히 우리 인간 측의 응답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 첫 번째 응답은 바로 감사가 아닐까요?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고 만사가 형통할 때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내 자녀가 명문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고, 내 딸이 그럴듯한 직장에 취직하고,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삶은 늘 내게 호의적이고, 인생은 순풍에 돛단 듯이 순조로울 때 감사하지 않을 사람 단 한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는 그게 다여서는 안 됩니다. 일이 마음먹은 대로 잘 안 풀릴 때, 만사가 꼬이고 꼬일 때, 나락으로 떨어질 때, 병고에 시달릴 때, 결국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 앞에서도 감사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감사입니다.

 

    감사의 생활이 잘 안 되는 우리가 바라봐야 할 여인이 한분 있습니다. 삶 전체가 감사였던 한 여인, 에티 힐레숨입입니다. 그녀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죽음의 수용소로 실려 가는 와중에도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부른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저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계속 찬미하나이다.”

 

    그녀가 베스테르보르크 임시 수용소를 떠나 죽음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는 마지막 열차에서 쓴 우편엽서가 나중에 한 네덜란드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 엽서는 마치도 오늘 우리에게 남긴 유언처럼 여겨집니다.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되어가는 사람들로 빼곡한 열차 안입니다. 나는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 위에 걸터앉아 이게 마지막이겠지 하며 성경을 펼쳐보았습니다. 펼쳐보자마자 이런 구절이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주님은 나의 산성 나의 바위.’ 아버지와 어머니, 미샤는 저와 몇 량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결국 사전 통보도 없이 이송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베스테르보르크 수용소를 떠났습니다.”

 

    처음에 그녀는 세상 안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 꽃들, 릴케의 아름다운 시, 암스테르담 운하 위에 찰랑이며 부서지는 햇살, 어린 아이들의 웃음소리, 갓 구운 빵 냄새...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감사가 그런 소극적이고 제한적인 감사에 머무르지 않고 감사의 외연을 확장시켜나가기 위해 끝도 없는 감사의 훈련을 쌓아갑니다.

 

    “나는 풍요로움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너무도 감사합니다.”

 

    에티의 내면을 가득 채운 풍요로움은 그녀와 사람들의 관계를 깊은 차원으로 성장시켜나갔습니다. 그녀는 세상 안의 다른 피조물 못지않게 동료 인간들에게도 아름다움이 배어있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이웃들의 약함을 점점 관대하게 수용하기 시작했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가한 잘못도 쉽게 용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녀 앞에 펼쳐진 삶은 처참하고 혹독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는 시한부 인생으로 전락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 앞에 다가온 뜻밖의 현실을 용납할 수 없었겠지요. 그러나 오랜 영적 투쟁과 그녀의 내면 안에서 깊은 삶이 이동이 이미 한번 이루어진 그녀였기에 오래 가지 않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 모든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세상이 하느님 현존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나를 평화로운 책상에서 끌어내어 이 시대의 근심과 고통 한 간운데 있게 해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녀에게 있어 감사는 좋은 것 나쁜 것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포용할 만큼 그 범위를 넘어 뻗어나갔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속에 퍼져 영혼에 잿더미처럼 내려앉은 비극에도 감사했고, 영롱한 빛을 내며 깊은 의미를 계시해주는 은총의 순간에도 감사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마지막에 이렇게 적습니다.

 

    “나는 베스테르보르크(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기 전 머무르는 대기 수용소)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케리 월터스, 아름답게 사는 기술, 생활성서 참조)

 

    우리 시대 대영성가 헨리 나웬 신부 역시 우리에게 감사의 훈련을 촉구합니다. “감사함의 훈련이란 나의 모든 존재와 소유가 사랑의 선물로, 그래서 기쁨으로 경축해야 할 선물로 주어졌음을 받아들이려고 확고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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