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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주님을 볼 수 있는 눈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08 조회수454 추천수7 반대(0) 신고





 주님공현 대축일 2012.1.8



 

 
(이사60,1-6 ;에페3,2.3.5-6;마태2,1-12)


  주님을 볼 수 있는 눈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오늘은 사랑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공적으로 드러난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지만 그분이 메시아요, 구세주로 오셨다는 것을 기뻐합니다. 이 시간 그 주님을 뵐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 하는 가운데 주님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 말이 있습니다. 정작 필요한 것을 가까운 곳에 두고 멀리서 찾는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늘 은총 안에 있으면 그것이 은총인줄도 모르고 살게 됩니다. 은총의 순간을 은총으로 느낀다면 더 많은 그리고 더 큰 감사의 기회가 될 텐데 말입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돌아보니 은총이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내 남편을 만난 것이 은총이요, 지금 내 아내를 만난 것 또한 은총입니다. 지금 부모를 모신 것이 또 자식을 둔 것이 은총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은총이라기엔 벅찬 십자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뒤집으면 틀림없이 은총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의 이 순간이 은총의 때임을 일깨우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유다 베들레헴에서 나셨는데 이것은 큰 은총입니다. 유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구세주를 기다려왔고 그분이 거기 오셨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탄생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동방에서 박사들이 찾아와서야 알게 됩니다(마태2,2).‘유다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시냐?’ 고 묻는 박사들의 말에 헤로데 왕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헤로데는 대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다 모아놓고 그리스도께서 나실 곳이 어디냐고 묻고, 결국은 ‘유다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기득권을 빼앗길 수 없었기에 두 살 아래 된 사내 아기들을 무참히 죽였습니다(마태2,16).



모든 것을 알게 되었으면 자기 뜻을 접고 진리를 따라야 하거늘 그는 더 큰 악의 구렁 속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욕심은 큰 화를 불러옵니다. 헤로데는 알게 됨으로써 악으로 치달았지만 동방의 박사들은 사뭇 달랐습니다. 그들은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고, 또 아기를 찾게 되면 알려달라는 헤로데 왕의 부탁을 들으며 길을 떠났지만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으로 돌아갔습니다(마태2,12).



참으로 안다는 것은 알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헤로데는 아는 게 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방의 박사들은 발길을 서둘렀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다른 길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계획을 접고 하느님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사야의 말씀이 우리를 일깨웁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이사 56,8-9).



당장은 밑지고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주님의 뜻을 선택하면 그 안에서 반드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 데로 나간다. 그리하여 그가 한 일은 모두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한 일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요한3,21).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은 자기 뜻을 접고 하느님의 원의를 선택해야 합니다. 율법학자 대사제, 동방박사의 얘기를 다 듣고는 결국 자기의 뜻을 펼치는 헤로데, 꿈의 안내를 받고 다른 길을 선택하는 동방의 박사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매 순간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듣고 자기 뜻을 접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안다는 것이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과 손발이 커지는 앎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이 순간이 은총의 순간임을 알 수 있는 눈이 뜨이기를 기도합니다.



별을 보고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볼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선물도 준비했습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했습니다. 비천한 마구간에 나셨지만 그분은 위대한 왕으로, 하느님으로 그리고 인간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나도 무엇인가 선물을 드려야 할텐데…….



학교에서 시력 검사하는 날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마태오 ‘너 눈이 몇이지?’ 했더니 ‘제 눈은 두개댄요’ 하였습니다. 선생님이 당황해서 다시 ‘아니, 눈이 얼마냐고?’ 하셨습니다. 순수한 마태오는 ‘저, 눈 안 파는대요’ 하였답니다. 눈이 몇이든, 눈이 얼마든 우리는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육안보다는 마음의 눈을 그리고 영적인 눈을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알아봐야 합니다. 내 옆에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알고 계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 큰 은총임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일어나 비추어라, 너희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이사60,1-2).하며 메시아 탄생을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구세주의 탄생으로 그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이 세상을 비추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된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잘 알아 뵙고 그 주님을 전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결코 내가 만든 주님을 전하지 않기를……… 사랑합니다. 


                        
                         
                          The glory nirvana eternal nirvana 
                                  영광의 생명(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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