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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말씀] 꿈과 자연 안에 있는 하느님의 언어 - 문종원 베드로 신부님
작성자권영화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08 조회수307 추천수1 반대(0) 신고
 메시지를 전하는 꿈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마태 2,12) 꿈의 신성한 출처는 성경의 맨 처음부터 맨 끝까지 나타납니다. 창세기는 꿈의 요소로 가득하고, 성경은 묵시록으로 마감하는데, 묵시록은 그 자체로 완전한 환시입니다. 창세기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는 중요한 현시로 시작하는 몇 까지 아름다운 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해 질 무렵,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창세 15,12-21) 꿈에서 요셉은 형들의 곡식 단들이 빙 둘러서서 큰절하였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37,5-11 참조)  시종들이 저마다 뜻이 다른 꿈을 꾸었고, 요셉은 꿈을 풀이해 줄 사람으로 초청을 받았습니다.(41, 16.25 참조) 창세기에서 꿈은 하느님의 인간과의 의사소통 방법들 가운데 하나로써 간주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지혜 선물은 꿈을 통해 왔습니다.(1열왕 3,5 참조)
 또한 성경은 자주 천사의 출현을 꿈이나 환시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요셉은 꿈을 꿉니다.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 1,20; 2,13.19 참조) 후에 아기 예수님을 발견하고 경배했던 동방 박사들은 꿈을 통해 지시를 받습니다.(마태 2,12) 우리는 중요한 행동을 하는 경우 모든 결정이 꿈을 통해 하느님께서 내리신 계시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메시지를 전하는 자연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동방 박사들은 별을 연구했고 별들을 통해 메시지를 알아들었습니다. 우리도 자연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들려주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종의 경계를 넘어서는 대화는 인간 공동체보다 더 큰 세계의 일원으로써 우리가 갖는 생득권의 일부입니다. 도마뱀, 새, 고라니, 소나무, 바람, 또는 바위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수천 명의 새로운 친척들, 곧 야생의 매혹적인 존재를 막 발견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새나 메뚜기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 자연에 기초한 사람들은 곰과 의사소통하지 못하거나 별의 노랫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깁니다. 자연 안에서 벙어리와 장님이 되는 우리는 우리가 우리를 낳은 세상으로부터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평범한 시.공간이 성스러운 것으로 변화되는 체험을 하기 위해서 자연으로 가십시오. 주의를 끄는 것에 초대를 받았다고 느낄 때까지 방황하십시오. 그것은 덤불, 풀잎, 돌, 개미탑이 될 수도 있고 무지개나 별자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앉아서 가깝게 그것들을 관찰하고 일기에 적으십시오. 그리고 자연에 당신 자신을 소개하고 가장 깊은, 가장 친근한 진실을 말하십시오. 평범한 인간 언어 이외에, 노래, 시, 비언어적인 소리, 이미지, 감정, 몸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 귀,눈,코,피부,직관,느낌, 그리고 상상력으로 들으십시오. 자연은 우리에게 방대한 교실에서 하늘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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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있어 자연은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친구처럼,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사람때문에 상처를 받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때문에 낙심하고, 실패나 좌절 때문에 분노할 때에도 자연의 품은 너그러운 어머니처럼 늘 열려 있다.

 그럼에도 관상기도와 같은 3차원을 넘어서는 4차원의 세계를 엿본다는 것은 현실을 포기해야 하는 아찔한 경험이기도 하다. 그것은 차라리 귀를 막고 현실에만 충실해지게 하기도 하지만 답답한 마음과 어쩔 수 없는 목마름이 있다.
 그러면 적당한 타협을 하기 시작한다. 반반씩은 어떨까요? 그리고 속삭이듯 약속을 한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 제게 조금 양보해 주시면 이다음에 꼭 갚아드릴께요.

 하지만 세상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선택해야 한다.
 오늘날의 동식물들은 우리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이 없을 지경이다. 심지어 자연의 섭리까지도 바꾸려 들고 있다. 천지창조의 원리만이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방법도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자연을 우리의 편리성대로 가꾸어 나갈 것인지,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우리의 삶을 바꾸어 나갈 것인지를 고민하고 어떤 방법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권리를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인지를 고민해야 함을 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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