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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권위를 가진 사람과 권위적 인간의 차이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09 조회수642 추천수15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2년 나해 연중 1주간 화요일 -
권위를 가진 사람과 권위적 인간의 차이
 

 


 

 

나의 아버지라는 글이 있습니다.

네 살 때는 “아빠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다섯 살 때는 “아빠는 많은 걸 알고 계셨다.” 여섯 살 때는 “아빠는 다른 애들의 아빠보다 똑똑하셨다.” 여덟 살 때는 “아빠가 모든 걸 정확하게 아는 건 아니었다.” 열두 살 때는 “아빠가 그것에 대해 모르는 건 당연하다.” 열네 살 때는 “아빠에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아빤 너무 구식이거든.” 스물한 살 때는 “우리 아빠 말이야? 구제불능일 정도로 시대에 뒤떨어졌지.”라고 아이들의 의식이 바뀌어 진다는 것입니다.

 

만약 위의 나이대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간다면, 아버지가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무섭게 대하거나, 무엇을 강요하거나, 혹은 때리기까지 하게 되는 나이는 언제부터일까요?

위의 나이대로라면 적어도 여섯 살 때까지, 즉 아빠가 세상 누구보다 크게 보일 때 아빠가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때릴 수 있을까요? 아빠가 화를 내기 시작하는 것은 아빠 스스로 자신이 하는 말이 아이에게 먹히지 않는다고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빠가 화를 내면 아이는 아빠가 크게 보여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따르게 됩니다. 화를 내면 아이는 아빠가 더 이상 권위를 지닌 크신 분이 아니라, 그냥 권위적인 인간으로 보이게 됩니다.

권위가 있는 사람은 권위적이지 않습니다. 권위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말 한 마디면 끝이 납니다. 그러나 권위적인 사람은 권위가 없기에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말과 육체적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을 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권위입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점령하고 한 곳을 바라보며 “저 곳에 도시가 하나 생기면 좋겠군.”이라고 해서 생겨난 것이 그의 이름을 딴 거대한 도시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이것이 권위입니다. 말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권위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고, 또 권위로 명령하니 마귀도 저항하지 못하고 도망치는 내용이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중학교 때 저의 담임선생님이 한 마디 하면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 권위를 가지기 위해서 삽으로 우리들을 때리셨습니다. 삽뿐만 아니라, 허리띠, 슬리퍼, 마대, 주전자, 무릎 등 모든 것이 아이들을 아프게 하는 도구였습니다. 우리들은 맞지 않기 위해 선생님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을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폭력을 행사하십니다. 그럴 힘이 있으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말로 통하지 않는 악령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그렇게 폭력을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폭력을 쓰는 권위적인 사람들에게 순순히 죽임을 당하십니다.

진정한 권위는 ‘상대를 좋아해서 따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권위에 비추어,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말에 힘을 싣기 위해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가한다면, 그것은 상대를 마귀취급 하는 것이거나, 혹은 자신에게 권위가 없음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다를 끝까지 당신 품 안에 데리고 계십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권위가 없으시고 권위적인 사람이었다면 그를 고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다를 끝까지 사람으로 대해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다루듯, 그렇게 사랑을 깨닫게 하여 변화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적 권위입니다.

 

군대에 가서 자대에 배치 받았을 때, 한 선임이 담배를 피우라고 한 개비를 주며 권했습니다. 저는 피우지 않는다고 했고, 그것에 기분이 상한 선임은 한 달 내로 담배를 피우게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매일 아침부터 눈 붙이는 순간까지 제대 할 때까지 저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끝까지 피우지 않았습니다. 권위적인 사람에게 굴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었다면 피워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그 사람은 저에게 어떤 권위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저를 사람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이든 육체적이든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람은 권위적인 사람이고, 권위적인 사람은 권위가 없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권위는 강요하지 않는 권위고, 물론 지금까지도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당신을 믿고 구원 받으라 강요하지 않습니다. 강요하고 폭력을 행사해 당신의 권위를 떨어뜨릴 필요가 없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닮은 권위를 가진 사람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그러기 위해서 혹시 남을 강요하거나 언어적, 혹은 육체적 폭력을 행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봅시다. 그리고 그리스도적 권위를 다시 찾도록 노력합시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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