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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권위 - 1.10,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10 조회수438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2.1.10 연중 제1주간 화요일 사무 상1,9-20 마르1,21ㄴ-25

 

 

 

 




참 권위

 

 

 

 



오늘은 ‘참 권위’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권위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이요 존속할 수 없는 공동체입니다.


권위주의는, 권위주의자는 나쁘지만 권위는 권위자는 좋습니다.

 

이제 성탄 이벤트 시기는 끝나고 평상의 연중 시기가 시작되니

참 홀가분하고 단순하여 좋습니다.


늘 초록 빛 평범한 일상을 충실히 살라고,

초록 빛 믿음을, 사랑을, 희망을 살라고 초록색 연중 제의(祭衣)입니다.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로마13,12.13b).

 


아침기도 독서 시 위의 로마서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연중시기입니다.


비상한 권위가 아니라 이렇게 일상에 충실할 때 평범한 권위입니다.

재물, 돈, 명예, 지위로 덧 입혀지는 권위가 아니라

안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권위입니다.

 


기도와 삶이, 말씀과 삶이, 관상과 활동이, 말과 행동이 하나 되었을 때

저절로 흘러나오는 권위입니다.


얼굴로부터, 말로부터, 글로부터, 삶으로부터 배어나오는 향기와도 같은

참 권위입니다.


감동적인 권위의 어른 두 분을 소개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과 함께 살았던 어느 사제의 고백입니다.

 


-제 기억 속에 깊이 새겨 있는 추기경님의 모습 가운데 하나는

경당에서 늘 밤늦게 까지 기도하시는 모습입니다.

고단한 일과가 끝나고 좀 쉬셔도 좋으련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은 당신 어깨 위에 지워진 교회와 사회의 무거운 짐을

이렇게 기도의 힘으로 지고 가셨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저도 기도하는 흉내를 내러 가끔 경당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고 나와 신발을 신으려 할 때면

언제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추기경님이 경당을 나가시면서 허리를 굽혀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으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추기경님의 기도와 겸손이 참 권위의 원천이었음을 봅니다.

이어 불교의 천태종 김 도용 종정의 간택 과정도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는 34살이 되어 늦깎이로 구인사에 출가했다.

스승인 2대 종정 남 대충 스님은 그를 대중들과 격리시켜

강 건너에서 소를 키우며 우사에서 살게 했다.

…그는 소를 키우고 1만 여명이 일하는 농장을 관리하면서

무려 16년 동안을 소처럼 일했다.

그는 밤이 되어도 자지 않은 채

장좌불와(바닥에 눞지 않고 앉아서 좌선)로 밤을 지새우며

수행하는 정진력을 보였다.

스승은 열반하면서

경전을 물론 책은 거의 들여다보지 않은 채 오직 소처럼 일하던 50살의

그에게 종단의 법통을 맡겼다.-

 


전설적인 일화입니다.

이런 김 도용 종정의 한결같은 허심(下心)이

또한 권위의 원천이었음을 봅니다.

 


참 권위를 찾는, 참 권위를 목말라 하는 사람입니다.


나라가 공동체가 혼란하고 무질서한 것은 권위가 실종됐기 때문입니다.

보고 배울 권위의 어른이, 지도자가, 스승이, 부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권위가, 신뢰가 붕괴되면 그 폐해는 너무나 큽니다.

직감적으로,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권위입니다.


강제하는 권위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순종케 하는 권위입니다.

 

옛 수도회 창립자들이 규칙서 없이도 권위로 공동체를 이끌었던 것은

그들 자신이

‘살아있는 규칙서’로, ‘살아있는 복음서’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결코 잔머리나 꼼수에서는 나올 수 없는,

사랑과 진실, 겸손과 온유, 정직과 신뢰의 삶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참 권위입니다.

 


하느님은 권위의 원천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일치될수록 참 권위의 사람이 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나 독서의 한나가 바로 권위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그대로 하느님의 권위입니다.

회당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던 이들은 모두 놀랐으니

그 말씀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참 권위는 더러운 영의 추방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먼저 예수님의 권위를 알아보고 고백하는 더러운 영입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입니다.”

 


예수님 권위의 소재는 바로 하느님이심이 환히 드러납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권위 있는 말씀으로 명령하니

더러운 영은 큰 소리를 지르며 혼비백산 달아납니다.


그러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새롭고 권위 있는 말씀에 놀랍니다.


참 권위가 아니곤 결코 호락호락하게 물러날 악령들이 아닙니다.

 

기도의 사람이, 말씀의 사람이 바로 권위의 사람입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가 깊어질수록

익어 성숙해 가는 권위입니다.

 


이런 권위를 보고 배우며 참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기도의 성모님을 통해 하느님의 권위를,

사무엘은 한나를 통해 하느님의 권위를 보고 배웠음이 분명합니다.

 


“만군의 주님,

…당신 여종에게 아들 하나만 허락해 주신다면,

그 아이를 한 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

 


간절하고 항구한 한나의 기도에 하느님은 아들을 선물하셨고

한나는 “내가 주님께 청을 드려 얻었다.” 하여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였습니다.

 


모전자전입니다.

주님께 청을 드려 얻는 아들이니

얼마나 기도와 사랑으로 정성을 다하여 키웠겠는 지요.

 


바로 이런 한나를 통해 하느님의 권위를 보고 배운 사무엘이었기에

하느님의 훌륭한 예언자로 살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새롭고 권위 있는 말씀으로

우리 안의 어둠의 세력들을 추방하시고

사랑의 성체로 우리의 내적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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