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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랑은 '다' 주는 것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13 조회수669 추천수12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2년 나해 연중 제1주간 금요일 - 사랑은 ‘다’ 주는 것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한 번 더 되새겨봅시다.

옛날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게는 귀여운 한 작은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매일같이 그 나무에게로 왔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을 열심히 주워 모아 왕관을 만들어 쓰고 숲 속의 왕 놀이를 즐겼고, 나뭇가지를 타고 그네를 타기도 하고, 열매를 따먹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고, 나무 그늘 아래서 낮잠도 자고, 그렇게 나무와 소년은 사랑하며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자꾸 흘러 소년도 나이가 들어 나무를 찾는 시간이 줄어들고 나무는 때때로 고독하기도 했습니다.

나무는 소년과 함께 옛날처럼 놀고 싶었는데 소년은 나이가 들면서 나무와 노는 것보다 돈이 필요했고 나무는 사과 열매를 주었습니다. 소년은 열매를 따 가지고 멀리 떠났지만 그래도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소년과 옛날처럼 놀고 싶은 나무에게 소년은 보금자리의 필요를 요구하고 나무는 자기의 가지를 베어가라고 하여 소년은 나뭇가지를 베어갔지만 그래도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소년이 늙어 돌아왔을 때 나무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고 하자 소년은 필요한 것이 쉴 곳이라고 합니다. 나무가 베어진 자신의 나무 밑동에 앉으라고 하자 노인이 된 소년은 그 위에 걸터앉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그저 행복했습니다. 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마냥 행복했습니다.

 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단 하나입니다.

‘사랑은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보시며,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시고, 율법학자들은 ‘사람이 어떻게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하며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죄를 용서할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고 하시며 중풍병자의 병을 치유해 주십니다.

당시에는 병이 곧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기에,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초자연적 능력이 곧 죄를 용서할 수 있는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낸다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행하시는 모든 권한은 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맡겨 주셨습니다.” (요한 3, 35)

나무까지도 모든 것을 줄 줄 아는 사랑을 하는데,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이야 당신의 모든 것을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께 주시지 않으셨겠습니까? 사랑을 줄 때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는 것입니다. 마음을 주는 것은 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사람에게 병을 치유하는 능력은 주었을지라도 죄를 용서하는 권한까지 인간에게 주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은혜를 주다 말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조금은 모자라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께 ‘모든 것,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사랑의 증표로 무엇을 주실 때, 그 일부분만 주신다면 더 이상 하느님은 사랑 자체는 아니신 것입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치유나 예언의 은사 등만 주시고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당신께서 끝까지 꿰차고 계신다면 하느님께서 교회를 온전히 사랑하셨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하면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있을 것이다.”

개신교에서는 그러나 사도들이 성경 어디서도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행사한 기록이 없다고 하며, 성경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사도들이 직접 죄를 용서해 주는 직접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안수로 성령님을 전해주는 내용은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불어넣어주시며 죄를 용서하라고 하는 이유는 성령님이 그 권위이시고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안수 등을 통해 성령님을 전해주는 행위는 성령님의 한 일부분을 전해주는 것입니까? 성령님은 한 하느님으로서 나눠질 수 없는 한 분이십니다. 성령님을 준다는 것은 하느님 전부를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모든 것’을 받으신 것처럼, 제자들에게도 ‘모든 것, 모든 권위, 즉 성령님’을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아버지와 같이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줍니다. 그 모습이 바로 십자가의 죽음이고, 그 옆구리에서 나온 ‘피와 물’이 교회에 주시는 ‘모든 것, 즉 성령님’입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오늘 복음을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마태 9, 8)

즉 병자를 치유해 주시면서 동시에 죄를 용서하시는 권한이 있음을 보여주신 분은 예수님 한 분뿐이어서, 예수님만을 칭하려고 했다면 “‘사람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이라고 썼겠지만, ‘사람들’에게 주셨다고 복수를 씀으로써 그 권한이 예수님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어졌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십니다. 하늘나라의 열쇠란 죄를 용서하는 권한입니다. 죄 때문에 하늘나라서 쫓겨났기에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하늘나라의 열쇠인 것입니다.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준다.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릴 것이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용서해 주면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이 두 문장은 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같은 ‘하늘나라의 열쇠’와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하늘나라의 열쇠는 ‘땅’에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들고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늘나라의 열쇠는 베드로에게 주신 것이지만 다른 사도들도 그와 일치한다면 그 권한을 함께 나누어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베드로를 중심으로 모든 사도들이 일치하시기를 원하셨고, 베드로를 중심으로 교회가 하나가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또한 중풍 병자가 치유되고 죄가 사해지는 것을 본 사람들이 이러한 권한을 사람들에게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듯이, 우리를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진 가톨릭교회 안으로 불러주신 하느님을 찬양해야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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