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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13 조회수916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월 13일 연중 제1주간 금요일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him,
“Child, your sins are forgiven.”
(Mk.2.5)



제1독서 사무엘 상권 8,4-7.10-22ㄱ
복음 마르코 2,1-12

어떤 형제님을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 형제님의 기분이 너무나도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좋은 일이 있나보죠?”라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에 형제님께서는 웃으며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제 아들이 곧 아기 아빠가 됩니다. 그래서 제가 ‘너는 네 아기에게 어떤 아빠가 되고 싶니?’라고 물었지요. 그러자 이 아들놈이 이렇게 말하네요. ‘아빠 같은 아빠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내가 그렇게 못살지는 않았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이 좋습니다.”

아빠 같은 아빠로 살고 싶다는 이 말. 어쩌면 가장 기분 좋은 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듣는 인정의 말이니까요. 하긴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 저에 대해 긍정적인 말을 쏟아 부으면 그냥 인사 치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다는 것은 그만큼 힘이 날 수 있는 한 마디인 것이지요.

사실 우리들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보다는 힘을 뺏는 말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가까이 있기 때문에 이 정도는 이해해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 가까이 있어서 편한 마음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행동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무시하고 소홀히 하는 모습, 그러면서도 나는 괜찮고 상대방은 안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을 서슴없이 행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실천해야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고 배려입니다. 이 사랑과 배려를 잃어버릴 때, 우리들은 주님의 뜻에 맞게 행복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만을 급하게 쫓아 살아가는 불행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사십니다. 특히 환자들을 깨끗이 씻어 주시고, 마귀 들린 사람들을 치유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은 가까이에서 이 모습을 직접 보았고, 힘과 위로를 얻는 따뜻한 말씀도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을 바로 옆에서 체험했음에도 믿지 않습니다. 즉, 당신의 신성을 보여주었지만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치유하시며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시자, 하느님을 모독한다는 말을 하면서 예수님을 거부하지요.

예수님께서 얼마나 실망하셨을까요? 또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요? 그런데 지금 우리 역시 예수님께 큰 실망을 드리며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즉, 주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내 뜻대로 살려는 이기적인 모습들이 그것입니다.

이제 주님께 더 이상의 실망을 안겨드리지 맙시다. 주님의 놀라운 기적들이 우리의 삶 안에서 더욱 더 환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이제는 주님께 대한 철저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가도록 합시다. 그때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주님의 사랑을 내 안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어떤 말을 할까 항상 귀 기울이는 사람은 결코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는 법입니다.(톨스토이)



40 이전에 풍 맞습니다.

어제 영화봤습니다. 피곤했는지 약간 졸았습니다. ㅋㅋ

전에 새벽을 열며 묵상 글에도 쓴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제가 30대 초반에 어떤 분에게 진맥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정식 한의사는 아니지만, 맥도 보시고 침도 놓는 분으로 꽤 유명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께서 저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세요.

“신부님, 이대로 나가시면 40 이전에 풍 맞습니다.”

‘설마’라는 생각을 했지요. 더군다나 우리 집안에는 풍 맞은 사람이 아예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말이 지금까지도 제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 40이 넘었는데도 풍 맞지 않았으니, 분명히 틀린 말인데도 말이지요.

저의 이 경우를 보면서, 미래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즉, 미리 알게 된 그 미래가 사실이든 거짓이든 나의 영혼을 두렵고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실 점쟁이들을 찾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미래를 알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점쟁이들은 거짓이든 진실이든 미래를 말하며 그 사람을 오싹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마음을 약하게 만들어 영혼을 두렵고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절대로 희망과 용기를 주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미래를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는 이유를 이제 깨닫게 됩니다. 미래를 미리 알면 희망과 용기를 간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는 현재. 이 현재를 기쁘고 힘차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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