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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14 조회수696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월 14일 연중 제1주간 토요일




“Why does he eat with tax collectors and sinners?”
Jesus heard this and said to them,
“Those who are well do not need a physician, but the sick do.
I did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Mk.2.16-17)



제1독서 사무엘 상권 9,1-4.17-19; 10,1ㄱㄴㄷ
복음 마르코 2,13-17

뇌 촬영을 통한 연구 결과, 내가 다른 이들로부터 배제당하는 경험은 뜨거운 것에 데거나 날카로운 흉기에 찔릴 때 느끼는 물리적 통증과 똑같다고 합니다. ‘정말로 이럴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암환자가 자살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타의든 자의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차단적일 수밖에 없는 AIDS 환자나 심각한 피부질환자 중 스스로 목숨이 끊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이들은 자신의 존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제외된다는 느낌에서 큰 아픔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관계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에게 도움을 주는 관계만을 받아들이려 하고, 나와 상관없는 관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거부하려 합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되는 청소년들의 왕따 문제도 여기에 포함되는 것이지요. 나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으니 함부로 해도 괜찮다는 생각, 그래서 어떠한 죄의식도 갖지 않으려는 파렴치한 모습을 취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창조물인 우리 모두는 의인이나 죄인이나 상관없이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평가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만이 할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남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주님처럼 모든 이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 말씀처럼 예수님은 죄인들과 더욱 더 많이 만났고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사람들은 죄인이라고 하면서 가까이 하지 않고 따돌렸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이 샘을 낼 정도로 죄인들과 먹고 마시면서 함께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하느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죽이려는 분이 아니라, 살리려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주님의 뜻과는 반대로 살았는지를 반성합니다. 철저하게 생명을 지키려고 하셨던 주님, 그러나 우리들은 사랑의 반대 행동을 취해서 철저하게 생명을 외면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갓 태어난 새끼 오리들이 태어나는 순간에 처음 본 대상을 어미 오리라고 생각하고 따른다고 하지요. 이를 각인효과라고 합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모습을 내 마음 속에 각인시켜, 그분을 늘 생각하고 따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한 우리들이 모여 이 세상에 더 이상의 폭력과 불의는 사라지고, 사랑과 일치가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끊임없는 전진이다. 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니체).




눈물

차 한 잔의 여유가 필요한 요즘이 아닐까요?

어떤 부부가 서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지요. 이 눈물을 본 남편은 아내를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당신은 툭하면 눈물을 흘리는데, 도대체 왜 눈물을 흘리는 거야? 내게 눈물을 흘리는 논리적인 이유 3가지만 말해봐.”

아내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남편과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눈물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남편이 논리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한달 피정 할 때가 떠올려집니다. 그때 피정 지도신부님과 면담을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저 주님의 사랑에 감격했고, 모든 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제게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눈물도 은총입니다.”

그 순간 얼마나 큰 감명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울고 있는 저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기 보다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이시는 신부님의 이 말씀에 좀 더 빨리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지요.

내가 만나는 사람에 대해 논리적으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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