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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교회'의 존재이유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14 조회수608 추천수11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2년 나해 연중 제2주일 - ‘교회’의 존재이유
 





 

 

 

마테오 리치는 우리가 잘 아는 바대로 중국 선교의 달인이었습니다. 그는 로마대학교에서 수사학 인문과정을 공부했으며 2년여 동안 철학과정을 마친 후 1580년 로마 가톨릭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년 후 본국으로부터 중국에 포교하라는 지시를 받고 중국 마카오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는 이후 다양한 선교활동을 통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대륙에 천주교를 정착시키고자 노력합니다.

당시 중화사상의 견고한 중국의 벽을 마테오 리치는 어떻게 넘을 수 있었을까요? 마테오 리치가 본격적 선교를 시작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중국의 문자와 언어를 배우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중국의 예의범절을 몸에 익히는 모범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고자 노력했습니다.

마테오는 수학에 조예가 깊은 과학자이기도 했으며 그가 제작한 지도인 양의현람도(兩儀玄覽圖)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지리학사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마테오는 자연과학적 지식에 뛰어난 후배들의 도움을 얻어 해시계, 천지의, 지구의 등을 제작해 중국인들에게 소개했습니다.

이런 준비를 통해 도달하게 된 것은 중국인들이 마테오를 경계대상이 아닌 친구로서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하느님에 대해 알려야 할 순간이 왔습니다.

그래서 최초의 한문 교리문답서인 <천주실의>를 저술하였습니다. 중국 선비와 서양 선비의 대화 형식으로 기록한 이 책에서 마테오리치는 불교와 도교의 공(空)과 무(無) 개념을 비판하고 유교의 상제(上帝)가 곧 그리스도교의 천주(天主)라고 명시합니다. 이렇게 <천주실의> 서문은 ‘천주란 무엇인가, 곧 상제이다’라는 구절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유학에서의 상제는 하나의 시공을 초월하는 존재, 하늘, 혹은 이치-도리(理)정도의 의미를 지닙니다. 유교의 상제는 마테오가 중국 철학에서 하느님과 가장 흡사한 개념이지만 하느님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천주교에서의 하느님은 유일한 존재이면서도 삼위일체의 사랑이란 개념이 빠지면 다른 유일신 사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 때 당시 중국인들이 알고 있었던 하느님과 가장 근접한 개념이 상제였던 것입니다. 마테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삼위일체교리나 성사론, 마리아론, 혹은 교회론 등의 어려운 교리부터 시작하지 않고 그들이 알고 있는 것들로부터 시작합니다.

이런 스승이 소통할 줄 아는 스승이고 큰 스승입니다. 다행히 그들은 상제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하느님을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상제라는 배에서 내려 하느님이라는 배를 갈아탄다면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진리들을 더 배워나가게 될 것입니다. 갈아타야 할 배는 항상 같은 항구에 있어야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소년 사무엘이 엘리라는 스승을 통해 주님을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에는 주님의 말씀이 드물게 내렸고 환시도 자주 있지 않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하느님을 만난 경험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무엘을 세 번씩이나 부르고 사무엘은 매번 엘리에게 가서 부르셨느냐고 묻습니다. 사무엘에게는 엘리가 자신이 아는 한계였습니다. 엘리는 나중에서야 하느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신다는 것을 알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게 하였습니다. 그 때서야 하느님은 사무엘과 대화하시게 됩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방식입니다.

“지금 하느님께서 나에게 나타나시면 내가 믿겠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바로 나타나시면 살아남을 인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옷을 입은 하느님, 즉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입장에서 하느님을 이해할 수 있는 최대한입니다.

그러나 만약 상제를 섬기고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유교 신자에게 예수님께서 그 다섯 상처를 지니고 나타나셨다고 해봅시다. 그는 귀신이라고 생각하고 기절하거나 도망치기 바쁠 것입니다.

하느님은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바로 당신을 드러내실 수가 없습니다.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에서도 예수님은 모세와 예언자들을 믿지 못하면 라자로라고 다시 부활해서 나타나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한 여자를 좋아해서 영화도 같이 보고 둘이 음식도 먹으러 다니며 데이트를 충분히 한 다음 좋아한다는 마음을 표현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 여자의 반응은,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 같아요.”였습니다. 내가 좋아한다는 말이 부담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여자들은 결혼하기 전까지도 자신의 남자가 맞는지 의심하고, 남자는 마음에 들면 빨리 관계를 해결해야 하는 본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각자의 템포가 있는데 혼자만 앞서가면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고양이가 밤에 차에 많이 치여 죽는 이유는 갑자기 밝은 빛을 보면 순간적으로 눈이 멀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인간과 그리스도를 연결해 주는 것이 성경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예수님은 당신을 알리기 위해서 사도단을 뽑으시고 그 사도단 위에 교회를 세운 것이지 성경을 쓰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사도들에 의해 그 훨씬 후에 쓰여진 것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과 하느님을 이어줄 참다운 중재자 모세와 그가 지니고 내려온 계약 판을 무시하고 자신들 나름대로 하느님과 직접 통교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이 ‘금송아지’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이 시나이 산에 오를 수 있었다면 그들 모두를 올라오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자신들이 믿는 하느님은 금송아지 정도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수준에 맞는 중재자를 뛰어 넘으려고 할 때 바로 자신들의 상상으로 만들어 낸 이단의 신을 섬기게 될 위험성이 큰 것입니다. 어쨌건 우리 한계 내에서 우리가 상상하는 하느님은 어떤 식으로 상상하던 그 분은 아니십니다. 그 분은 우리 한계를 벗어나십니다.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 했던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중재하여 보여주시려 했던 아버지는커녕 예수님조차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보는 것이 곧 아버지를 보는 것인데도 아버지를 직접 보기를 원했고 예수님의 부활까지도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예수님의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우리들이 어떻게 예수님과 직접 통교하며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분께서 당신께 오라고 만들어주신 교회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그리스도께 도달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사람이 세상의 배에서 그리스도의 배로 옮겨타는 항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요한이라고 여겨지는 한 제자와 안드레아는 본래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일러줍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아직까지 그들에게 예수님은 라삐나 속죄제물이지 그리스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분과 하룻밤을 묵고 나고는 돌아가서 각자 자기 형제들에게 ‘메시아(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합니다. 또 베드로는 이 말을 듣고 예수님께 갑니다. 예수님은 그를 보자 즉시 당신께서 교회의 반석으로 삼게 될 인물임을 일러주십니다. 즉, 베드로가 안드레아라는 중재를 통해 당신께 왔듯이, 베드로 위에 세워진 교회를 통해 사람들이 당신께 오리라는 예시입니다.

 

우리가 선교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베네딕또 16세께서 갑자기 우리 집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고 생각해봅시다. 놀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옆집 사람인 우리들이 두드려야 도망치지 않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마테오를 통해, 사무엘은 엘리를 통해, 요한과 안드레아는 메시아를 통해, 베드로는 안드레아를 통해 부르시기를 원하셨다면, 먼저 그리스도께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교회의 가르침을 온전히 배울 마음을 지니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 우리를 당신께로 부르시고 계신 것입니다. 또 우리는 믿지 않는 이들과 교회를 연결하는 또 다른 중재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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