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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15 조회수888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월 15일 연중 제2주일




 They said to him, “Rabbi” -.
which translated means Teacher .-,
“where are you staying?”
He said to them, “Come, and you will see.”
So they went and saw where Jesus was staying,
and they stayed with him that day.
It was about four in the afternoon.
(Jn.1,38-39)



제1독서 사무엘 상권 3,3ㄴ-10.19
제2독서 코린토 1서 6,13ㄷ-15ㄱ.17-20
복음 요한 1,35-42

한 연극배우가 공연 중에 잠자는 연기를 하다가 아주 짧은 순간 진짜로 잠이 들었답니다. 다음날 한 평론가는 그 주연 배우의 연기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고 하지요.

“그녀의 연기는 완벽에 가까웠다. 바닥에서 잠자는 장면의 어색함만 제외하면…….”

잠자는 연기를 한 게 아니라 실제로 잠이 들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잠자는 연기에서 실제로 잠이 든 것만큼 완벽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실제로 잤던 그 장면이 가장 어색했다고 말하는 평론가의 말이었습니다.

살다 보면 실제가 가짜 같고 가짜가 더 진짜 같은 경우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진짜와 가짜가 함께 자리 잡고 있는 혼돈의 세상 안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혼돈의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것을 쫓으며 살아야 할까요? 겉으로는 있어 보이는 진짜 같은 가짜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겉으로는 볼 품 없어 보여 가짜 같지만 사실은 진짜인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폼생폼사’라는 유행어도 있는 것처럼 겉으로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것 같지요. 그러나 가짜라는 것은 오래가지 않으며, 언젠가 우리를 후회하게 만들 것입니다.

세상에서 오로지 진실된 분은 딱 한 분.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주님이 가짜처럼 보이지요. 정의롭지 못한 세상, 그리고 온갖 악이 만연해 보이는 이 세상 안에서 주님의 위치는 가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신 이 세상 안에서 힘 있어 보이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부귀영화에 끊임없는 동경을 보이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러한 동경과 이에 따른 선택은 순간의 만족만을 가져다줄 뿐 영원한 기쁨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진짜인 주님을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유혹들을 뒤로 한 채, 주님을 첫 번째 자리에 모실 수 있는 용기 있는 우리 자신의 선택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요한의 제자 두 사람이 예수님께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나중에라도 가르침을 듣고 싶어서 묵으시는 숙소를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와서 보아라.”라고 하셨습니다. 즉, 나중에 미룰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당신이 사는 곳을 보고 당신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날부터 함께 살기 시작합니다. 직접 보고 체험한 결과 예수님만이 참된 분이심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들에게 “와서 보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 앞에 나아가 그분을 알고 그분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항상 ‘나중에’만을 외칩니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처럼 나중에 가보겠다며 어디에 묵고 계신지 만을 계속해서 묻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내 스스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과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주님과 살아갈 때, 주님만이 ‘진짜’이심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타인의 눈동자에 비친 나에게서 진실의 힘이 시작된다(로스 페로).




오래된 옛날 사진을 보며

1980년의 어느 날.

사진 정리를 하다가 초등학교 때 사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성모님을 가마에 태워 이동하는 것을 볼 때, 성모의 밤 행사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옛날 성당 건물을 보면서 그때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이제는 그 성당 건물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데,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바라보니 소중한 기억들을 되새기게 되어 기분이 좋아집니다.

특히 이렇게 어렸던 제가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그 당시 젊고 멋있었던 신부님이 지금은 할아버지 신부님이 되셨다는 사실에 시간의 빠름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살면서 왜 중요한 것을 실천하며 살지 못하는지……. 아픔과 상처를 주면서까지 왜 그렇게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지……. 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지금의 내 모습을 반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래된 옛날 사진을 꺼내 보며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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