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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16 조회수923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월 16일 연중 제2주간 월요일



As long as they have the bridegroom
with them they cannot fast.
No one sews a piece of unshrunken cloth on an old cloak.
If he does, its fullness pulls away,
the new from the old, and the tear gets worse.
(Mk.2,20-21)



제1독서 사무엘 상권 15,16-23
복음 마르코 2,18-22

제가 잘 가는 단골 식당이 있습니다. 이 식당에서는 우선 친절합니다. 그리고 가끔씩 덤으로 주는 각종 서비스 반찬에 감탄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 식당을 선호하지요. 또 제가 잘 가는 단골 미용실이 있습니다. 그냥 머리카락 자르고 머리를 감겨주는 보통의 미용실과 달리 이 미용실은 머리를 감겨줄 때 약간의 두피 마사지를 해줍니다. 단골이라서 특별히 해주는 것이지요.

제가 잘 가는 식당과 미용실을 생각해보니 단골의 매력은 ‘덤’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덤으로 주는 서비스 반찬, 덤으로 해주는 두피 마사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덤’으로 인해 단골이 되는 것이고 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지요.

어떤 경제학 박사가 이러한 마케팅 법칙을 말했다고 합니다.

‘20퍼센트의 단골손님이 80퍼센트의 매출을 책임진다.’

장사의 성패가 단골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단골을 만들까요? 바로 덤을 줄 때만 가능합니다. 더 친절하고, 더 상냥하고, 더 배려하는 모습들이 단골손님에 대한 일종의 덤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내 자신은 내게 있어 가장 오래된 최고의 단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된 ‘나’라는 최고의 단골에게 어떤 덤을 주고 있나요? 혹시 아무런 덤도 주지 않고 또 쌀쌀맞게 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가장 귀한 최고의 단골인 나를 내쫓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수 없다고 합니다. 내 안에 사랑이 있을 때에만 다른 이들에게도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남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남들의 관점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하려 합니다. 그 결과 자신의 마음속에 사랑을 채울 수 없어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단식을 하고 있었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모습을 가리키며 사람들이 묻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자기 자신 안에 사랑이 없어 주님의 사랑에 대해 스스로 느끼지 못하면서, 남들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남들과의 비교만으로 단식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주님에 대한 스스로의 깨달음 뒤에 비로소 진실한 단식을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을 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과 비교하면서 자기를 비하하는 모습이 아닌, 나부터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오랫동안 귀한 단골인 내게 ‘덤’을 줄 수 있는 너그러운 사랑의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나의 이웃들에게도 기쁘게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클레먼트 스톤).




현명한 이기주의

어느 성당의 고해소 들어가는 문.
비뚤어진 마음의 상태를 뜻하는 문이랍니다.
고해성사를 보고 난 뒤에는 똑바로 된 문으로 성당 안에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였습니다. 승무원이 비행기 안에서의 안전수칙에 대해서 모션을 보이면서 설명을 하더군요. 그런데 그 말 중에 의아한 부분이 하나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비상시 산소 호흡기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안내에 관한 것인데, 어린이와 동승했을 경우 보호자가 먼저 산소 호흡기를 착용한 다음 아이에게 호흡기를 씌워주라는 것이지요. 무조건 아이부터 보호해야 하는 일반적 상식에 분명히 어긋난 안내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더군요. 본능적으로 아이를 먼저 챙기다보면 어른에게 호흡 곤란이 올 경우 아이가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어른과 아이 모두가 위험해 질 수 있는 까닭에 어른이 먼저 착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부터 챙겨야 모두가 평안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이 생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은 더 큰 것을 추구하기 위해 나부터 챙길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이기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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