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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콩깍지 부부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17 조회수717 추천수15 반대(0) 신고




지난여름, 피정지도와 논문 교정 작업을 위해 캐나다에서 머무르는 동안 어느 신자 가정에서 한 달 정도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신부가 한 가정에서 그것도 여름 손님으로 한 달을 머무르면서 신세를 진다는 것이 보통 민폐 끼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미리 다른 여러 방도를 찾았는데도 마땅히 해결 방법이 없어서 그리 되었던 것이다. 십 수 년 동안이나 가정을 떠나 혼자 사는 데 익숙해진 나로서도 다른 식구들과 한 지붕 밑에서 함께 자고 먹는 일이 처음에는 너무 불편하게 느껴졌었다.

“썩 반갑지 않은 여름 손님으로 이렇게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미리 부탁드리건대 신부라고 특별히 신경 쓰시지 말고 그냥 평소에 사시던 대로 편안하게 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신부님, 그런 걱정일랑 꽉 붙들어 매세요. 원래 저희 둘 다 심각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딱 질색입니다. 평소에 저희들 사는 대로 편안하게 살터이니 신부님도 편히 지내시고 나중에 흉보기 없기예요.”

첫 날 이런 인사를 건넨 것이 실수였을까. 이 댁 사람들은 정말 한 달 내내 나라는 존재를 잊고 사는 듯 보였다. 이건 절대 흉보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분들이 내가 그 댁에 머무는 동안 얼마나 편안하게 살았는지 조금, 아주 조금 말해 보자면......

그 집 아빠 : 그 동안 밀렸던 집 안 일이란 집 안 일은 내가 머무는 기간 동안에 어떻게든 끝내보려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뜨거운 여름날 자갈이 깔린 멀쩡한 뒤뜰을 파헤쳐서 블록을 까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함께’ 작업을 해놓고 나중에 사람들을 불러다 준공 기념 파티를 할 때는 ‘최 신부님이 조금 도와주었다’라고 말하는 것을 내가 분명히 들었다.

그 집 엄마 : 일단 오전 10시 안에는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당연히 아침 식사는 내가 눈치껏 챙겨 먹어야 했는데 주로 라면을 끓여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한 10시 반이나 되면 나타나서는 꼭 한 마디 한다. “신부님, 제가 갑상선 수술을 받고 난 뒤부터 이렇게 아침에는 맥을 못춰요. 내일부터는 빨리 일어나서 아침상 잘 차려 드릴 테니 라면 드시지 마세요.” 그러고도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여지없이 갑상선 타령이 이어졌다. 내가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날마다 그 집은 갈비 구운 냄새가 진동했다.

그 집 아이들 : 가톨릭 사립학교에 다닌다는 아이들 중에 그렇게 자주 싸우는 놈들은 처음 봤다. 좀 조용하다 싶으면 집에서든 달리는 차에서든 어찌나 싸워대든지 나중에는 엄마가 변명이라고 얼른 한 마디 꺼냈다. “죄송해요, 신부님. 아이들이 평소에는 안 그랬는데 신부님이 계시니까 유난히 더 싸우네요.” 내게는 얼른 나가달라는 말로 들렸다. 자주 싸워서 에너지가 많이 필요했는지 두 놈이서 소 한 마리는 거뜬히 먹는 것 같았다. 초밥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지 가끔씩 그 놈들이 남긴 말라 비틀어진 초밥이 내 몫까지 돌아오기도 했었다.

그렇게 그 댁에서 지낸지 한 달이 다 되어갈 때쯤 자매님은 나만 보면 아이들 치과에 가야하는데 돈이 없다는 하소연만 되풀이하곤 했다. 하숙비를 그렇게 우회적으로 청구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끝까지 모른 체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테이블 위에 놓인 카드 한 장을 보게 되었다. 결혼기념일을 맞아 그 댁 형제님이 자매님에게 쓴 카드였는데 그 내용을 읽고 나는 그만 웃다가 쓰러져 버렸다. 그 카드 안에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한 구절이 쓰여 있었다.

“사랑하는 OO에게! ......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나의 아내로서, 그리고 아이들의 엄마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 주는 당신이 있기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완벽한 당신? 그 표현 하나에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그 댁에서 보냈던 한 달이 왜 그토록 편안하게 느껴졌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내게는 한 치도 빠지지 않는 소홀함 그 자체인 자매님이 형제님의 눈에는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완벽한’ 아내로 보이는 신비. 그 콩깍지의 신비가 빚어내는 놀라운 평화가 그 댁에 충만했기에 겉으로는 소홀함 자체인 대접을 받고도 나는 그토록 편안한 느낌으로 한 달을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결혼 20주년을 맞는 그 부부가 존경스러웠다. 20년 동안을 함께 살아오면서도 아직 콩깍지를 벗지 않고 한결같은 사랑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것을 체험하고 이룬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우선 나만 보더라도 애당초 사람을 한 평생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어마어마한 일은 꿈도 꿔보지 않았다. 아예 생각조차 못해봤다. 이 둘 중 어느 쪽이 사랑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있겠는가?

한 생을 살고가면서 나는 이 세상에, 이 세상은 나에게 무슨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사랑! 사랑만 남는다. 사랑이 그나마 가장 최후의 순간까지 내게 남아있는 것이다. 내가 한 생을 살아가는 동안 주고받은 사랑! 내 부모님과 나눴던 사랑! 내 형제들, 내 친구들과 나눴던 사랑! 그 사랑만이 마지막 떠나는 나를 배웅해 줄 것이다. 만약 내가 마지막 호흡을 내려놓으면서 조금이라도 주저한다면 그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내가 사랑했던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사랑이다. 바로 그 놀라운 사랑을 우리들은 부모에게서 배운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도 역시 사랑이다. 그런데 그 사랑은 먼저 부부 사이에서 넘쳐나서 아이들에게 흘러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아이들은 사랑을 느낌으로 전해 받는다. 아이들에게는 거짓으로 사랑을 전해 주지 못한다. 부부 사이에 먼저 사랑이 넘쳐나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흘러가는 사랑은 집착으로 왜곡되기가 쉽다. 남편으로부터 혹은 아내로부터 채워지지 않는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랑은 없다. 부부간의 사랑이 없이 그 자녀들이 세상과 타인을 향하여 베푸는 사랑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는 보기만 해도 흐뭇한 것들이 많다. 콩깍지가 걷어지지 않고 오래 오래 끼어있어서 한 치도 빠지지 않는 소홀함 그 자체인데도 한 치도 소홀함이 없는 완벽함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팔불출 커플들을 바라보는 것은 분명 그 흐뭇한 일 중 하나였다. 팔불출 소리를 좀 들으면 어떤가.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지 않은가. 올 해로 결혼 20주년을 맞은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완벽한 콩깍지 부부’에게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주님과 사람들의 눈에 아름답고, 내 영혼이 기뻐하는 것에 세 가지가 있으니, 형제간의 화목과 이웃끼리의 우정, 그리고 부부간 금슬의 화합이 그것이다.”(집회25,1)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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