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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고집의 뿌리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17 조회수757 추천수16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2년 나해 연중 제2주간 수요일 - 고집의 뿌리

 




 

 

이솝의 작품 중에 “나귀의 고집”이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고집이 무척 센 나귀를 묵고 산길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얼마쯤 가다가 이 나귀가 곧은길에서 벗어나 낭떠러지 쪽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안심하고 느긋하게 뒤따르던 나귀 주인은 순간 큰일 났다 싶어서 얼른 나귀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나귀를 끌어올리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귀는 도로 올라오려고 하지 않고 자꾸만 낭떠러지 쪽으로 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한참 동안 당기기거나 빼내려는 씨름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잡고 있던 꼬리를 놓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기까지 딸려 내려갈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고집불통인 나귀죠? 그러나 저도 어렸을 때 나귀와 같았던 적이 기억납니다.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누군가의 잘못으로 넘어지게 되었고 머리를 땅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아파 죽겠는데 친구라는 녀석들이 웃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분하고 아파서 마구 울었습니다. 그랬더니 모두 놀라서 저를 마루에 누이고 빙 둘러서서 괜찮으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잘 됐다싶어 더 크게 울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니 머리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일어섰다가는 엄살 부렸다고 창피를 당할까봐 계속 울었습니다. 함께 놀던 제 친형을 비롯한 친구들은 저를 달래는 것도 지쳤는지 울고 있는 저를 혼자 두고 다들 다시 놀러 나가버렸습니다. 저는 울음을 그치고 앉아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울보가 되어버린 저를 한탄하였습니다.

 

결국 사람이 고집불통이 되게 하는 것은 체면이나 자존심 때문인 것 같습니다.

중세기의 전쟁이야기 가운데, 유명한 로랑 장군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로랑은 프랑스의 황제 [샤를 마뉴] 대제의 12용사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스페인을 점령했던 이슬람교도들인 무어인과 전쟁이 벌어졌을 때, 로랑이 이끄는 군대가 포위당하고 곤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옛날 전쟁에서 이런 경우에 구원군을 부르기 위하여, 뿔나팔을 대장이 휴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로랑은 자기의 체면 때문에 뿔 나팔을 불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부하들이 하나 둘씩 쓰러지고 아주 위급해 졌지마는, 로랑의 고집은 자기 자신이 죽을 순간까지 뿔 나팔을 불지 않고 만 것입니다. 로랑의 체면 유지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부하를 전멸시키고 말았습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이단에 빠졌지만 헤어 나오지 못하는 한 분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분의 한 친구가 이단 종교에 빠져서 많은 재산을 날렸습니다. 나중에 그 분이 많은 것을 잃고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 친구에게 아직도 거기서 말하는 것을 정말 그대로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친구가 대답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믿었고, 지금은 안 믿어. 근데 이젠 쪽팔려서 못나가.”

자신이 가는 길이 나락을 향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체면이나 자존심 때문에 방향을 바꾸지 않는 사람들이 사실은 적지 않게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인간의 이런 완고한 면 때문에 화가 나시고 슬프신 것입니다. 꼬리를 잡고 끌어 올리고 싶지만 끝까지 나락으로 향하는 고집불통인 나귀들이 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시는지 고쳐주시지 않는지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 분을 고발하여 죽이는 것이 그들 목적입니다.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은지, 죽이는 것이 옳은지 따위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나쁜 길로 가고 있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께 상처를 입히고 그 분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고통을 주어 죽이기까지 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입니다. 지금 와서 돌아설 수도 없습니다. 창피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집단으로부터 버림받는 것도 두렵습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무리들 속에 있어야 체면이 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안식일이지만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그들의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그들을 잃지 않으려고 당신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까지 잃을 수는 없습니다. 이젠 그들을 잡고 있던 손을 놓으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더 이상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더욱 예수님을 미워하게 되고, 친하지도 않던 헤로데 당원들과도 손을 잡고 예수님을 없앨 모의를 하게 됩니다.

어쩌면 지옥이라는 곳은 이런 나귀와 같은 이들이 가는 곳 같습니다. 즉 본인이 원해서 가는 줄 알면서도 가는 것입니다. 그냥 하느님이 밉고 그 분이 없는 곳으로만 가고 싶어서 스스로 가는 곳입니다. 사람은 이렇게까지 악하게 되어 마귀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완고하여 지옥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으려는 자존심이나 체면 차리는 것부터 없애야 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예수님께 ‘고통과 멸시’를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낮아지는 것을 즐깁시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모세의 많은 기적을 보면서도 왕의 자리에 있었기에 끝까지 고집을 부렸고 그래서 맏아들도 죽고 많은 것을 잃게 되었던 것처럼, 고집은 체면이나 자존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체면과 자존심의 뿌리는 교만입니다. 남들에게 멸시 당하고 낮아지는 것을 즐길 줄 알 때, 옳지 않은 길임을 알면서도 고집부리며 그 길로 계속 가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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