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하느님의 눈 - 1.1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18 조회수421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2.1.17 화요일 성 안토니오(251-356) 아빠스 기념일

 

사무 상16,1-13 마르2,23-28

 






하느님의 눈

 

 

 

 


예수님의 눈은 하느님의 눈이며 예수님의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눈을, 마음을 보고 배우는 우리들입니다.

오늘은 ‘봄’과 ‘분별’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불교의 진리에 이르는 성스런 길이라는 팔정도의 순서가

정견, 정사유, 정언, 정업으로 이어지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바르게 볼 때 바른 생각이요, 바른 말이요 바른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바르게 보는 정견(正見)이 모든 분별의 출발점입니다.

 


제대로 바르게 보기는 얼마나 어려운지요.

똑같은 눈이라도 보는 것은 다 다릅니다.

하여 편견과 선입견이요 불완전한 견해와 의견입니다.

바로 인간의 한계이자 원죄의 결과가 편견과 선입견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공통점은 있습니다.

진선미를 감상하는 감식안입니다.

보는 눈이 깊어질수록 진선미에 대한 감각도 깊어집니다.


아침성무일도 로마서 독서 시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 신선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십시오.

이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도록 하십시오.”(로마12,2).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하느님을 닮아 갈수록

저절로 정견, 정사유, 정언, 정업의 새 사람에 분별의 지혜입니다.


하느님만을 찾는 이들은 하느님을 닮아감으로

편견과 선입견도 치유되어 하느님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오늘 1독서의 사무엘 상권에서

사무엘이 이사이의 아들 엘리압의 외모에 반해 선택하여 기름을 부으려하자

하느님은 즉시 제동을 거십니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사람의 눈은 외모를 보지만 하느님의 눈은 마음을 봅니다.

하느님 앞에 어떤 위장이나 가면도 통하지 않습니다.

얼굴도, 머리도, 재능도, 업적도 그 무엇도 아닌

마음을 보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을 닮아 갈수록 외모가 아닌 마음을 볼 것이요

점차 편견과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눈은 그대로 하느님의 눈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법을 보는 게 아니라

안식일 법 넘어 살아있는 인간의 현실을 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혁명적 선언입니다.

모든 우상이 타파되고 사탄의 사슬의 정체가 폭로됩니다.

안식일 대신 하느님을 제외한, 국가, 경제, 문화, 교육, 정치, 법 등

모두를 넣어도 통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결코 이들을 위하여 인간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이 모두들 안에 사람이 빠졌을 때 이들은 곧장 사람을 얽어매는 우상이 되고

사탄의 시스템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안식일은 물론 모든 것들이 주님 앞에 상대화 됩니다.

바로 사람의 아들, 주 예수님의 분별의 잣대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볼 때

비로소 편견과 선입견에서 해방되어 올바른 분별이 가능함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은총으로

우리 모두 새 사람이 되게 하시고 올바른 분별의 눈을 선사하십니다.

 


“주님, 홀로 선이신 주님만으로 풍요를 누리게 하소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