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사도를 뽑으심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19 조회수713 추천수16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2년 나해 연중 제2주간 금요일 -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사도를 뽑으심

 




 

 


한 번은 가톨릭 잡지에 글을 기고하였는데 나중에 출판되어 온 제 글을 읽다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한 사람을 회개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는 의미로, “예수님은 공생활 동안 유다 한 명도 회개시키지 못했습니다.”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옮기던 편집자분이 제가 ‘유다인’을 ‘유다’로 잘못 쓴 줄 알고 글을 이렇게 고쳐서 출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인 한 명도 회개시키지 못했습니다.”

이미 출판 되어버린 것을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어떻게 유다인 한 명도 회개시키지 못하셨겠습니까? 문제는 편집자가 제가 하려는 말의 의도를 잘 모르는 사람이란 것에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유다인 한 명도 회개 못 시키신 분으로 만든 사람이 되었습니다.

원고를 받은 사람은 원고를 보낸 사람을 잘 알고 이해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섞여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저를 온전히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를 알았으면 제가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임을 알고 그대로 옮기거나 적어도 - 물론 이 일이 있은 후로는 항상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질문을 했지만 - 출판 전에 물어보기라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열둘을 뽑고 그들을 ‘사도’라 부르셨습니다. 사도란 ‘아포스톨로스’, 즉 ‘파견 받은 자’란 뜻입니다. 천사, 즉 ‘메신저’와 같은 의미로 보아도 됩니다. 파견된 이는 파견한 사람의 말을 그대로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사도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로부터 파견된 사도임을 먼저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보고 들은 대로만 전할 뿐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참조: 요한 3, 11; 8, 26). 사도는 파견하는 사람이 맡기는 것을 그대로 전해야합니다. 그러나 그 전해 받는 것의 의미를 모르거나 자신의 생각이 가입되어 받은 것과 다르게 전달하게 된다면 파견한 자에게 피해를 입히게 됩니다.

아드님 외에는 아버지를 온전하게 아는 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드님을 파견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마태 11, 27)

아버지께서 인간에게 전하라고 아드님께 맡기신 ‘모든 것’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파견하실 때 주셨던 ‘성령님’입니다 (참조: 요한 3, 34-36). 요르단 강에서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받으실 때에야 비로소 아버지께로부터 공식적으로 파견되신 것이고 그 때부터 공식적으로 아버지를 증거하는 삶이 시작됩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밤새 기도하시고 당신의 사도들을 뽑으십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당신을 파견하신 것처럼 그들을 파견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요한 17, 18)

그런데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파견하시면서 당신의 모든 것인 성령님을 주셨던 것처럼 당신께서도 사도들에게 당신의 모든 것인 ‘성령’을 부어주시며 ‘하느님나라의 열쇠’인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 20, 23)

 

그런데 왜 한 명을 뽑지 않고 여러 명을 뽑으셨을까요? 왜냐하면 사람은 어떤 누구도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 수 있도록 완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하늘나라 열쇠를 주셨지만, 곧 그를 ‘사탄’이라 부르고 이후에도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자살까지 하였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에 혼자 그리스도를 온전히 이해하고 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토마 사도 혼자 있을 때는 그리스도를 뵙지 못했지만 사도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리스도를 뵙고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사도들이 함께 할 때만이 당신의 온전한 대리자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한 명의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우셨을까요? 그 이유는 사도들 중에서 그 수장을 뽑아놓지 않으면 서로 자신들이 높다고 주장하다가 교회가 갈라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개신교를 한 번 봅시다. 물론 가톨릭교회가 잘못을 한다고 해서 갈라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하나 된 모습을 보입니까? 아닙니다. 그들도 수백 개의 종파로 나뉘어 서로 다른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리가 똑같으면 종파가 나눠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많은 다른 교리들을 가르치셨을 리가 만무합니다.

따라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의 어떠한 예언도 임의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2베드로 1, 20)

성경이 임의로 해석되어지면 갈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임의로 해석되어 여러 종파로 갈라진다는 것은 하나이신 하느님의 말씀을 여러 의미로 해석한다는 뜻이고 그 자체로 전해야 하는 그 분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예전에 복음만 해도 50개 이상이 떠돌고 있었고, 서간 수는 헤아릴 수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복음을 4개로만 정한 것도 교회고 서간들과 요한묵시록까지 선별하여 정경을 정한 것도 교회입니다. 즉 교회의 권위로 성경을 정한 것이고, 이것 자체가 교회가 한 목소리로 진정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구별해 낼 수 있는 지식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성령의 감도가 교회에 있기 때문에 많은 글들 가운데서 정경을 가려낸 것처럼 교회의 가르침은 오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당신의 모든 것, 즉 성령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많은 사도들이 있지만, 그래서, 베드로와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하나라면 교회도 하나여야 합니다. 교회가 갈라지는 것은 그리스도 가르침의 해석의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여럿일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은 여러 사도들 중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움으로써 하나인 교회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불완전한 인간을 당신의 대리자로 파견하시기 위해서 처음부터 완전을 뜻하는 열두 명의 대리자를 뽑으시어 서로 보완하게 하심과 동시에, 한 명의 수장을 둠으로써 그 가르침이 갈라지지 않게 하셨고, 지금까지 한 단일 교회로 이천 년 동안 항상 가장 크게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뽑힌 사도들은 모두 불완전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당신 증거자로 파견하십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 위에 세워진 교회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받을 벌보다 소돔과 고모라의 벌이 견디기 더 쉬울 것이라 하십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