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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첫날밤/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23 조회수527 추천수11 반대(0) 신고



최강 스테파노신부님의 묵상글을 읽으시는 교우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오늘부터  교황청 라테란대학에서 교회법학 박사학위를 받으신후  신부님이 그토록 원하셨던  선교사로 발령 받으신 첫 선교지 중국 스자좡에서 쓰셨던 묵상글들을 올립니다. 


2008년 9월 15일 아침에 나는 또 다시 서울을 떠나 스자좡 (석가장, 石家庄)이라는 이름도 낯선 도시에 섰다. 여행용 트렁크 하나를 끌고 스자좡 역을 나섰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넓은 역전 광장을 가득 매운 사람들이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서 다 쏟아져 나왔을까? 도저히 빠져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얽히고 설켜있는 택시들 중에 하나를 간신히 잡아타고 앞으로 중국말을 배우게 될 허베이사범대학으로 향했다. 아직 아침 시간인데도 도시는 쾌쾌한 매연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문득 서울의 상쾌한 (?) 공기가 그리워졌다. 추석 다음 날이라고 학교가 쉬는 바람에 등록을 하지 못하고 오전은 빈둥거리며 보냈다.

몇 시지? 아침 일찍 베이징을 떠나는 기차를 타기 위해 잠을 설쳤던 터라 잠깐 침대에 누워있는다는 것이 그만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오후 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아! 아침을 안 먹었구나. 어슬렁, 어슬렁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을 찾아 학교 근처를 배회하고 있던 중, 제법 규모가 큰 백화점이 눈에 들어왔다. 6층에 있는 음식 백화점 여기 저기를 다 둘러봐도 어떤 재료로 어떻게 조리한 요리라는 것을 짐작할 만한 음식은 딱 한 가지. 쇠고기면 (牛肉面)! 그 우육면을 한 젓가락 입에 넣는 순간 조미료가 혀를 한 꺼풀 에워싸는 맛이 느껴졌다. 도대체 조미료를 얼마나 많이 넣었길래 이럴까?

밤이 되었다. 스자좡에서 보내는 첫 날 밤. 추석 다음 날의 보름달빛이 창에 가득 쏟아져 들어왔다. 혼자구나. 나 혼자구나. 나는 어쩌다가 지금 여기까지 흘러왔을까. 지금까지 살면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사람도 없는 도시의 첫 날 밤들을 수없이 보내 왔지만 스자좡에서의 첫 날 밤은 그 느낌이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구슬픈 비가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던 프라하에서, 도착하자마자 환전상에게 사기를 당했던 바르쎌로나에서, 아랍문화의 정취가 가득 한 튀니스에서, 그리고 너무 깨끗해서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졌던 싱가폴 등등... 아는 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보냈던 수 많은 첫 날 밤들도 나름대로 특별한 느낌으로 기억에 남아 있지만 스자좡에서의 느낌은 분명 그것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도시가 아니라 오래 머물러 살아야 하는, 아니, 어쩌면 평생을 살게 될지도 모르는 도시에서 이렇게 말 한 마디 통하지도 않으면서 철저하게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마치 내가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곳에 오기 전까지의 삶은 마치 연습이었다고나 할까. 이제 막 태어난 갓난 아기처럼 말 한 마디 못하고,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이 곳에서 시작하는 이 첫 날 밤은 분명 나의 삶의 또 다른 부분의 시작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부터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어느새 내 마음은 희망으로 설레기 시작했다. 지나간 인연들에 대한 안타까운 그리움보다는 새로 만나게 될 인연에 대한 호기심으로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정든 고향을 뒤로 하고 길을 떠나보지 않는 사람은 이 설레는 감정을 느낄 수 없다. 정든 사람들을 멀리 하고 새로운 인연을 찾아 떠나보지 않은 사람은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은 이 신선한 느낌을 이해할 수 없다.

내게 이 첫 날 밤은 신생아가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힘들게 빠져나가야만 하는 어머니의 산도 (産道, the birth canal)와도 같은 것이다. 하느님께서 나를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시기 위해 마련해 놓으신 하느님의 산도 (産道)를 이 밤에 나는 홀로 빠져나가고 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는 사람,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기꺼이 고향과 부모와 형제를 떠나는 사람들은 이렇게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위로부터 태어나는 체험 말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모름지기 이러한 '위로부터 새로 태어나는 체험'을 날마다 새로이 하는 것이리라. 떠나라!(루카10,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요한3,3-7)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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