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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성(祝聖)된 삶 - 1.2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23 조회수325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2.1.23 월요일 설 민수6,22-27 야고4,13-15 루카12,35-40

 

 

 

 






축성(祝聖)된 삶

 

 

 

 



날마다 동녘 하늘 찬란히 떠오르는 둥근 태양은

그대로 하느님 사랑 축복을 상징합니다.


태양 없이 한시도 살 수 없는 세상이듯이

하느님 사랑 축복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우리들입니다.

 


얼마 전 전례 강의를 들으며

새롭게 마음에 와 닿은 축성이란 말마디였습니다.


비단 성직자나 수도자뿐 아니라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이들은

모두가 축복 받아 거룩한 존재가 된 축성된 사람들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이

우리의 축성을 더욱 깊고 새롭게 해 줍니다.


살아있다는 자체가 축복입니다.

 

우리 삶의 역사는 그대로 하느님 축복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로 이런 한량없는 하느님 축복에 대한 응답이

우리가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미사와 성무일도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축성된 삶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데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기도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습니다.

 

얼마 전 새삼스런 깨달음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어느 화목한 부부를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사랑과 신뢰가 가득담긴 서로의 눈길이요 눈빛이었습니다.

순간 부부일치의 삼위일체 원리를 깨달았습니다.

 



모든 축복된 개인이나 공동체에 적용되는 공동원리입니다.

사랑과 돈과 일입니다.



제가 만난 사이좋은 부부들 모두 이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축복, 돈의 축복, 일의 축복을 모두 받은 부부들이었습니다.

 


가난이 앞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옆문으로 달아난다 합니다.

사랑을 생활로 만드는 것이 돈이요 일입니다.

사랑 빠진 일과 돈만으로의 현실로도 안 되며,

일과 돈 빠진 사랑의 이상도 얼마 못가 무너지고 맙니다.

 


“너희는 멈추고 하느님 나를 알라.”

 


문득 생각난 시편 구절입니다.

일과 돈의 땅의 현실에만 눈길을 두다 보면 하늘 사랑을 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멈추고 눈 들어 하늘을 보며

하늘 축복을, 하늘 사랑을 깊이 호흡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1독서에서 사랑 축복을 묵상했고,

2독서에서 돈 축복을 묵상했고,

복음에서 일 축복을 묵상했습니다.

 

 

 

 



우선적인 축복이 하느님 사랑의 축복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은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느님의 기쁨은, 하느님의 일은

당신 창조물에 끊임없이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존속한다는 자체가 그대로 하느님 축복의 증거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축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영원한 빚쟁이인 우리들입니다.

 



태초에 창조하자마자

하느님의 축복으로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세상이요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죄보다 강한 축복이요 은총입니다.

원죄(原罪)의 사람이전에 원복(原福)의 사람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지난날도 그러하셨고 지금도 그러하시며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축복주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욕심으로 눈이 가려 보지 못하는 축복 받은 현실입니다.

마음의 눈이 닫혀 불평불만이지 마음의 눈만 열리면

온통 하느님 축복의 선물에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에 행복한 삶일 것입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지 살 줄 알면 어디서나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설날은 하느님이 축복 주시기로 작심하신 날입니다.


하느님은 이 거룩한 미사 중 사제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민수기의 축복을 주심으로

사랑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시고 지켜주시리라.”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평화를 베푸시리라.”

 

 

 

 




다음 축복이 돈 축복입니다.

하느님 사랑 축복에 저절로 따르는 돈 축복입니다.

돈 많아서 돈 축복이 아니라 겸손하고 검소한 삶에 적절한 돈 축복입니다.

 


오늘 2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장사하여 돈을 버는 이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자만하지 말고 겸손 하라는 것입니다.

돈이 우상이 될 때 결코 행복도 없고 목숨도 위태합니다.

마시고 마셔도 여전히 목마른 탐욕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있는 자들이 오히려 인색하고

없는 자들이 오히려 후덕함을 보기도 합니다.

욕심 없는 자가 진정 부자이며

욕심 많은 자는 영원히 가난한 자임을 깨닫습니다.

야고보의 말씀은 그대로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시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참 무능한 인간입니다.

계획은 사람이 하지만 이루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이렇게 자기 분수를 아는 겸손한 자가 현자요 부자입니다.

결코 필요한 돈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주님만이 전부이기에 결코 환상에 빠지지 않고

덧없는 세상 것들의 욕심에 자기를 잃는 일이 없습니다.

하느님 빠진 세상 본질의 허무를 직시하기에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사랑하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마음을 지니게 됩니다.

진정 자만하지 않고 겸손히 주님의 뜻에 따라 분수에 맞게 살아 갈 때

그 상황에 적절히 따르는 돈의 축복입니다.

 

 

 

 


일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큰 축복입니다.

사실 돈이 나올 수 있는 곳도 일입니다.

얼마 전 어느 자매가 직장생활에 힘겨워하기에 조언한 말이 생각납니다.

“자매님, 어려워도 돈이 나올 곳은 그 직장뿐이 없지 않습니까?

그 직장 말고 돈 나올 곳이 있습니까?”

 

너무나 평범하고 자명한 진리입니다.



하여 불교의 백장선사는 제자들이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의 청규를

좌우명으로 삼아 살아가도록 했습니다.

 



오늘 복음의 깨어 기다리는 종들은 분명

자기소임에 충실한 근면 검소한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정약용 선생이 아들에게 준 좌우명도

‘근검(勤儉)’이란 두 글자의 말이었습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너희고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깨어 맡겨진 일에 근검의 자세로 항구할 때

비로소 일은 축복이 되고 임재하시는 주님의 칭찬과 상급을 받습니다.

 

 

 

 


설날이 되면 큰 절을 하며 세배를 하곤 합니다.

오늘 저희 수도원의 원로 되는 분들도

젊은 형제들의 ‘까치까치 설날’ 노래에 이어 큰 절 세배를 받았고

형제들은 세배 돈을 두둑이 받았습니다.

절을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습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절할 수 있는 어른들이 점차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참 좋은 절은 주님께 하는 절입니다.


불교의 스님들이 왜 그리 절을 강조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마 마음을 비우고 축복을 받는 수행으로

절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을 것입니다.

 

절하라 있는 절(寺)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절을 할 때

그 하심(下心)의 겸손한 마음 텅 빈 자리에 가득 차는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하여 우리 요셉수도원 수도승들은

성당에 들어오고 나갈 때 마다 제대 앞 주님께 큰 절을 합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께 큰 절로 세배를 바친 여러분들에게

주님은 사랑의 축복, 돈의 축복, 일의 축복을 풍성히 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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